中 ‘묻지마 협상중단’… SK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급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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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플래닛, 中서 1조 유치 백지화


SK그룹은 올해 초 ‘SK플래닛 투자 협상 무산’ 내용을 담은 보고서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 보고서에는 ‘이유’가 빠져 있었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중국민성(民生)투자유한공사(중민투)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어서였다.

중민투는 SK플래닛의 사업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1년 가까이 투자 협상을 진행해 왔다. SK플래닛으로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외에는 중민투의 변심을 해석할 길이 없었다. 중민투는 민영기업 60개사가 주주로 참여한 중국 최대 민영 투자회사다. 자본금은 500억 위안(약 8조9000억 원)에 달한다. 전후 설명 없는 일방적 협상 종료는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SK그룹은 ‘사드’를 입에 담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대중국 관련 사업에서 사드는 사실상 금기어로 통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에서도 협상 테이블에서 ‘사드’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사드 보복은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SK플래닛의 중국 자본 유치 실패로 인해 SK의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은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SK그룹은 2006년부터 중국에 직접 진출하거나 합작을 통해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촉진해 왔다. 실제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등 SK그룹은 중국 사업을 적극 확대해 왔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도 이번 투자 유치를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주력 사업인 11번가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꾀하고 모바일 영역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중민투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경우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11번가는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SK플래닛 역시 이번 투자에 관해 “SK플래닛은 이미 상당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투자 협상의 목적은 단순히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다. 글로벌 사업 인프라 및 고객 확보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중민투의 지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중민투의 일방적 협상 종료로 SK플래닛의 1년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SK그룹의 또 다른 중국 프로젝트였던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공장도 사드 사태 이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연내 중국 내 배터리 제조 공장 설립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다른 국내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한다는 취지로 2015년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후 중국 정부가 인증을 통과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기차 배터리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LG화학과 삼성SDI는 지난해 6월 해당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 추가 인증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돌연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 수정안 초안’을 공고하고 한 달간 의견을 수렴했다. 문제는 수정안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 중국 현지 업체인 BYD와 옵티멈나노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큰 상황이었는데 사드 이후 더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동일 dong@donga.com·이샘물 기자
#사드#sk#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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