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남과 여①] 아슬아슬한 자각이 주는 신선함…굿!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23일 06시 57분


납치된 아들을 찾으려 목숨을 내걸고 꿈속으로 향하는 고수는 애끊는 부성애를 연기한다. 설경구가 그의 조력자다. 사진제공 | 로드픽쳐스
납치된 아들을 찾으려 목숨을 내걸고 꿈속으로 향하는 고수는 애끊는 부성애를 연기한다. 설경구가 그의 조력자다. 사진제공 | 로드픽쳐스
블랙과 화이트,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남(男)과 여(女), 혹은 여와 남. ‘개취’(개인취향)일 뿐인 각기 시선에 성적(젠더·gender)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전혀 없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들일지언정,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의 취향대로다. 두 남녀기자가 매주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적어도 눈치 보는, ‘빨아주기’식 기사는 없다. 엔터테인먼트 각 분야 담당기자들이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했다. 가장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시선을 유지하자며.

■ 영화 ‘루시드 드림’

● 22일 개봉·15세 관람가·101분
● 주연: 고수·설경구
● 감독: 김준성

● 줄거리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 대호(고수)는 3년 전 계획적으로 납치된 아들을 찾고 있다. 그러다 발견한 프로그램 루시드 드림.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상태에서 꿈의 세계로 진입하는 ‘자각몽’으로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그런 대호를 친구인 정신과 의사(강혜정)와 베테랑 형사 방섭(설경구)이 돕는다. 마침내 대호는 모든 단서가 지목하는 한 남자를 꿈에서 만난다.


● 히트다히트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는 것, 그것이 ‘자각몽=루시드 드림’이다. 그 꿈속 이야기는 의식에 따라 어느 정도는 조작 혹은 조정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자각몽은 어떤 점에서는 또 다른 기억일 수도 있겠다.

영화 ‘루시드 드림’은 그래서 꿈 자체보다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자각의 꿈속에서 되살려내는 애끊는 부성의 과거는 곧 현재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도드라지는, 극중 탐색 가능한 사건에 관한 모든 실마리는, 과거와 현재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조작하고 조정할 수 있지만 도저히 통제할 수는 없기에, 기억은 온전한 ‘현실’이 되지 못할 뿐이다.

영화는 태생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심지어 일부 장면에선 그 비교의 욕망을 의지로써 내비친 건 아닐까 의심하게도 한다. 하지만 운명과 의지가 대척점에 선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루시드 드림’이 지닌 최대의 장점은 운명과 의지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자각’하는 선에서 어쨌거나 신선함과 새로움을 안겨주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기억으로서만 ‘현실’이 존재가능함을 드러냄으로써, 이야기 서술에 관한 또 다른 방식과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루시드 드림’은 공상에 가까운 상상력을 바탕에 깔아둔 스릴러로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모름지기 꽉꽉 짜이고 채워 넣어 빈틈이 없어야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장르라는 점에서, 스릴러로서 ‘루시드 드림’은 다만, 아쉽다. ‘스릴러=반전’이라는 고정관념을 의식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 평점아이콘, 이렇게 갑니다

● 히트다 히트
말이 필요할까요. 눈과 귀가 즐겁습니다.

● 알쏭달쏭
지금은 모르겠어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건 아니야
시간과 돈이 아까울 수 있습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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