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강명헌]경제민주화와 재벌 정책, 분노가 아니라 이성적이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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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양극화, 장기 경기 침체에 따른 실업과 중산층 붕괴 등으로 인해 이념과 정책을 넘어선 ‘분노의 정치’가 만연하고 있다. 분노를 가장 잘 건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막말이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들은 불만을 느끼는 유권자를 막말로 자극해 기성 정치의 틀을 무너뜨리는 데 이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재벌로 막말을 계속해 온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뽑혔고, 필리핀에서도 막말의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족벌 정치와 양극화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촛불 집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까지 이끌어 냈다. 촛불 집회는 단순히 국정 농단 사태에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양극화, 고용 불안, 청년 실업 등 각종 경제·사회적 병폐에 시달리던 시민들의 분노와 함께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재벌들의 정경 유착과 정유라 입시·학사 특혜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 존재감이 없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계속되는 ‘사이다’성 발언으로 대선 후보로 부각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분노의 정치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치권은 서로 탄핵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너나없이 경제 민주화를 경제 정책의 골격으로 삼는다는 정강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재벌만 손보면 경제가 바로 살아나고 경제 민주화가 이뤄지며 경제 정의가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에 입각한 재벌 개혁 관련 정책들이다. 이것은 경제 실패의 원인을 정경 유착으로 몰아가 재벌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분노의 경제’에 불과하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재벌 개혁 관련 법안은 100개가 넘는다. 금명간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법안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 등이다. 이 개정안들이 통과되면 고발권 남용으로 소송이 급증하고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 기업 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재벌을 한국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간주하는 한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양극화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2% 초중반이고 잠재성장률도 2%대로 내려오는 등 ‘퍼펙트 스톰’은 아니더라도 외환위기에 맞먹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률 둔화 등과 함께 국내에서는 소비 투자 수출의 동반 침체는 물론 정치적 불확실성 등의 내우외환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양극화 해소를 이루는 선순환을 위해서는 분노의 경제가 아닌 차분하고 이성적인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경기 활성화와 성장잠재력 제고에 힘써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경제민주화#재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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