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라서 더 빛난 “나도 대학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력이 나의 힘” 대학 신입생 3인

카자흐스탄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문다나 씨.
카자흐스탄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문다나 씨.
“정유라 같은 낙하산 입학이 있는 줄 몰랐다. 고려인인 내가 과연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잠시 좌절도 했지만, 더 의지를 불태워 도전했고 결국 성공했다.”

1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고려인 4세 문다나 씨(21·여)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문 씨는 다음 달부터 이 대학 경영학부 17학번으로 새내기 생활을 시작한다.

문 씨는 “할아버지는 자신 대신 한국에 가서 꿈을 이뤄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낯선 한국에서 혼자 살며 입시 준비를 한 것은 모험이었지만 각박한 현실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더니 희망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가족이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난 뒤 그곳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나 서울 강남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다는 편견을 문 씨처럼 보기 좋게 깬 대학 신입생이 적지 않다. 출신 지역이나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꿈을 이룬 학생들이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대 특혜 입학 의혹으로 수십만 명의 입시준비생이 좌절했지만, 이들은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 할아버지의 꿈 찾아온 고려인 소녀

문 씨는 2015년 정부 장학생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고서 이대 어학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입학한 서울대를 나와 올해 이대에 재입학을 결정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문 씨는 지난해 1학기에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수업을 듣다 2학기에 휴학계를 냈다. 한국어에 서툰 문 씨에게 정치학 수업은 무리였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던 문 씨가 ‘반수(半修)’를 결심한 것은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밖에 몰랐던 문 씨에게 역시 한국어를 모르는 할아버지는 자신도 가보지 못한 고향 땅에 가서 꿈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단다. 문 씨는 “한때 서울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실패라고 느껴져 자괴감에 괴로웠다”며 “다시 적성을 찾은 만큼 긍정적으로 새 학기를 맞는 ‘예스 우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난치병도 꺾지 못한 의지

난치병 ‘베게너 육아종증’ 딛고 고려대 합격한 김동하 씨.
난치병 ‘베게너 육아종증’ 딛고 고려대 합격한 김동하 씨.
“너의 위대함을 찾아라(Find your greatness).”

올해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입학한 김동하 씨(19)는 수험생 시절 내내 이 말을 품고 살았다. 김 씨는 몸속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성 난치병 ‘베게너 육아종증’ 투병자다. 한 달에 한 번씩 면역억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스테로이드제를 매일 복용해야 한다. 김 씨는 “몸이 아프지만 방송국 PD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겪는 이 병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2015년 겨울에 생겨났다. 처음엔 기침을 하다 피가 나와 폐렴인 줄 알았지만 점차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에 꾸준히 공부해 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후에도 병마는 그를 괴롭혔다. 입원까지 했지만 평소대로 공부했다. 꼭 필요한 8시간 수면을 취하면서도 깨어 있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했다. 김 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저등급을 넘겨 고려대 수시 융합형인재전형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노래방 소음도 막지 못해

차상위계층 어려움 이기고 중앙대 들어간 한채림 씨.
차상위계층 어려움 이기고 중앙대 들어간 한채림 씨.
중앙대 경제학부에 입학하는 한채림 씨(19·여)는 차상위계층 집안이다. 온 가족 네 명이 대전의 상가 건물 3층 방 두 칸 월세방에 산다. 아래층은 노래방이다. 매일 밤마다 흘러나오는 트로트 소리에 집에서 공부하는 건 꿈도 못 꿨다. 한때의 방황도 있었고 왕따도 당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1, 2학년 때 반장을 도맡아 했다. 결국 다양한 교내 활동을 바탕으로 수시 전형을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했다.

한 씨는 KBS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고 출신으로는 처음 50문제를 모두 맞혀 골든벨을 울린 김수영 작가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한 씨는 “‘멈추지 마. 꿈부터 다시 써봐’라는 문장처럼 노력하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졸업 후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황하람 기자
#흙수저#대학생#신입생#노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