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같은 낙하산 입학이 있는 줄 몰랐다. 고려인인 내가 과연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잠시 좌절도 했지만, 더 의지를 불태워 도전했고 결국 성공했다.”
1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고려인 4세 문다나 씨(21·여)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문 씨는 다음 달부터 이 대학 경영학부 17학번으로 새내기 생활을 시작한다.
문 씨는 “할아버지는 자신 대신 한국에 가서 꿈을 이뤄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낯선 한국에서 혼자 살며 입시 준비를 한 것은 모험이었지만 각박한 현실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더니 희망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가족이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난 뒤 그곳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나 서울 강남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다는 편견을 문 씨처럼 보기 좋게 깬 대학 신입생이 적지 않다. 출신 지역이나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꿈을 이룬 학생들이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대 특혜 입학 의혹으로 수십만 명의 입시준비생이 좌절했지만, 이들은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 할아버지의 꿈 찾아온 고려인 소녀
문 씨는 2015년 정부 장학생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고서 이대 어학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입학한 서울대를 나와 올해 이대에 재입학을 결정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문 씨는 지난해 1학기에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수업을 듣다 2학기에 휴학계를 냈다. 한국어에 서툰 문 씨에게 정치학 수업은 무리였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던 문 씨가 ‘반수(半修)’를 결심한 것은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밖에 몰랐던 문 씨에게 역시 한국어를 모르는 할아버지는 자신도 가보지 못한 고향 땅에 가서 꿈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단다. 문 씨는 “한때 서울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실패라고 느껴져 자괴감에 괴로웠다”며 “다시 적성을 찾은 만큼 긍정적으로 새 학기를 맞는 ‘예스 우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난치병도 꺾지 못한 의지
“너의 위대함을 찾아라(Find your greatness).”
올해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입학한 김동하 씨(19)는 수험생 시절 내내 이 말을 품고 살았다. 김 씨는 몸속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성 난치병 ‘베게너 육아종증’ 투병자다. 한 달에 한 번씩 면역억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스테로이드제를 매일 복용해야 한다. 김 씨는 “몸이 아프지만 방송국 PD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겪는 이 병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2015년 겨울에 생겨났다. 처음엔 기침을 하다 피가 나와 폐렴인 줄 알았지만 점차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에 꾸준히 공부해 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후에도 병마는 그를 괴롭혔다. 입원까지 했지만 평소대로 공부했다. 꼭 필요한 8시간 수면을 취하면서도 깨어 있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했다. 김 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저등급을 넘겨 고려대 수시 융합형인재전형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노래방 소음도 막지 못해
중앙대 경제학부에 입학하는 한채림 씨(19·여)는 차상위계층 집안이다. 온 가족 네 명이 대전의 상가 건물 3층 방 두 칸 월세방에 산다. 아래층은 노래방이다. 매일 밤마다 흘러나오는 트로트 소리에 집에서 공부하는 건 꿈도 못 꿨다. 한때의 방황도 있었고 왕따도 당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1, 2학년 때 반장을 도맡아 했다. 결국 다양한 교내 활동을 바탕으로 수시 전형을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했다.
한 씨는 KBS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고 출신으로는 처음 50문제를 모두 맞혀 골든벨을 울린 김수영 작가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한 씨는 “‘멈추지 마. 꿈부터 다시 써봐’라는 문장처럼 노력하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졸업 후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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