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의 SNS 뒤집기] 北의 ‘자연사’ 망상…비정상국의 생떼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14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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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北, 김정남 자연사 한 것.’
최근 김정남 독살과 관련해 누리꾼을 당황하게 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북한에선 독침 맞춰서 죽이는 게 자연사로 정의되나 봄” “북한의 뻔뻔함은 끝이 없구나”라는 등 비판적인 누리꾼의 댓글과 게시글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진실을 홀로 외면하려는 북한의 당돌함에 “황당하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김정남 암살 사건을 ‘생떼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암살에 이어 정상적인 외교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 외교 여권 소지자가 심장마비로 자연사 한 것이다.”

20일 오후 강철 주말레이시아북한대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김정남 암살설’을 극구 부인하며 조속한 시신 인도를 주장했다. 5쪽짜리 ‘언론 보도문’을 읽는 내내 단 한번도 ‘김정남’이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곤 애써 “사망자 신원은 북한 국적의 ‘김철’”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결탁해 이번 사건을 조작했다는 억지주장도 펼쳤다. 현지 경찰이 북한 국적의 남성 다섯 명을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했다. 강철 대사는 “그들이 용의자라고 보는 근거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이라며 “미국과 한국이 손잡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김정남 암살 장면이 담긴 말레이시아 공항 폐쇄회로(CC)TV가 공개됐다. CCTV에 잡힌 독극물 공격은 2.33초 만에 끝난다. 공격을 받은 뒤에도 김정남은 공항 안내데스크에 도움을 요청하고 의무실로 걸어갔다. 이후 사망하는 데까진 2시간이 더 걸렸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독극물 공격을 직접 실행한 베트남인 도안티흐엉(29),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 이외에 리정철(47), 리재남(57), 오종길(55), 리지현(33), 홍송학(34) 등 모두 5명의 북한 국적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사실상 ‘북한이 배후’임을 시사한 것이다. 리정철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가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 또한 이번 사건의 배후로 북한 당국을 지목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공격-사망의 ‘시간차’를 둔 것은 이번 사건을 ‘자연사’로 치장(?)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한다. 용의자들의 도피 시간을 벌기에도 유리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이를 부정하며 김정남의 시신 인도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시라도 그의 시신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20일 누르 라싯 이브라힘 부경찰청장은 “현재 (김정남 시신의) 독성 검사가 진행 중이며 기존의 독성 물질 대신 인체에 남지 않는 신종 독성 물질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신을 인도받을 우선권이 ‘유가족’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은 더욱더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초로 예정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인권결의 제재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철 대사의 ‘한국과의 공모’ 발언 등으로 북한의 몇 안 되는 외교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와의 사이도 틀어졌다.

특히 중국이 보호하고 있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말레이시아로 보낸 것을 두고, 중국이 시신 인도 문제를 놓고 북한 당국과 대립하고 있는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는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는 이유다.

김정남 암살에 이은 북한의 ‘생떼외교’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외신과 현지 당국자의 판단이 어떻든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이라 강요한다. 이처럼 몽니와 망상, 억지주장으로 비정상적인 외교를 강행하는 데에는 ‘외부의 눈’보단 ‘내부의 눈’이 더 위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당의 주요 간부라 하더라도 말 한마디면 총살당하는 것이 북한의 냉정한 현실이다. 득보다 실이 많은 암살을 수행하고, 외신 등에 맞서 홀로 ‘생떼외교’를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일종의 비정상국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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