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암살리스트 올랐지만… 인권고발 영화는 포기할 수 없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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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퍼스트 스텝’ 개봉 앞둔 탈북감독 1호 김규민씨

최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규민 감독. 그는 “통일 준비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내 영화가 북한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규민 감독 제공
최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규민 감독. 그는 “통일 준비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내 영화가 북한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규민 감독 제공
“죽는 건 두렵지 않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하는 건 사실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나요? 제발 그만했으면….”

탈북자 출신 ‘1호 영화감독’인 김규민 씨(43)의 말이다. 그는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진 뒤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괜찮냐’ ‘조심하라’는 안부 연락을 적잖게 받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줄곧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해왔다. 요즘은 2015년 미국에서 열린 ‘제12회 북한 자유주간 행사’에 참가한 탈북자 24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스텝(First Step)’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김정남 피살의 충격을 이렇게 전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가 ‘이젠 조심해야 한다’고 전화를 했더라고요. 제가 북한의 ‘암살 리스트’에 올랐다면서요. 요즘도 차 탈 때면 습관처럼 차 밑바닥이나 뒷좌석을 살펴요. 누가 있을까봐…. 뉴스로 피살 소식을 접했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가족들도 불안해하고요.”

영화는 지난해 8월 홍콩에서 열린 북한인권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달 한국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6월 미국 워싱턴에서의 상영도 준비 중이다. 차기작으로는 북한 상이군인 가족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사랑의 선물’이란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북한을 다룬 영화를 선보일 땐 늘 만감이 교차한다”며 “특히 이번 영화는 탈북자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1만, 3만 원씩 십시일반 제작비를 보태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나온 북한에 대한 영화는 잔혹한 실상을 고발하거나 탈북자의 어려움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나는 같은 처지에서, 탈북자들의 진솔한 속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앞서 김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탈북을 소재로 한 ‘크로싱’(2008년)에서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고, 2011년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영화 ‘겨울나비’를 선보였다.

두려워도 영화는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때도 탈북자 활동가에게 협박 문자가 온 걸 봤습니다. ‘네 아내, 자식들까지 모조리 죽이겠다는….’ 그 장면을 찍는데 손이 덜덜 떨려 카메라가 흔들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인권 활동가들의 심정은 어떤지, 그럼에도 왜 계속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고발하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원래 배우가 되는 게 김 감독의 꿈이었다. 그는 북한에서도 배우에 대한 꿈을 위해 지독한 배고픔을 견뎠고, 1999년 탈북 뒤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보시다시피 북한 사투리가 남아있죠? 배우는 힘들 것 같더라고요. 힘들던 와중에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영화를 하려는 거면 감독을 하라’는 지도교수님 제안으로 영화 제작에 발을 들였습니다.”

김 감독은 통일이 될 때까지 북한 현실을 다룬 영화를 ‘끈질기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건 가시밭길입니다. 국내 관객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눈물 흘리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현실이죠. 하지만 한 편, 한 편 공들여 만들다 보면 우리 관객들도 언젠가 알아주지 않을까요. 통일이 되면, 그땐 남북한을 배경으로 한 신나는 코미디 영화 한 편 만들고 싶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탈북감독#김규민#퍼스트 스텝#암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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