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1945년 동물농장’과 2017년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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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때도 갈기에 리본은 매고 다닐 수 있을까요?” 몰리가 물었다. 스노볼이 대답했다. “동무, 당신이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리본은 노예의 휘장에 지나지 않소. 자유가 리본보다 더 값지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단 말이오?”―‘동물농장’(조지 오웰·민음사·1998년)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구속되는 날들이다. 비선 실세와 전직 비서실장, 전직 장관과 기업 총수 구속에 이어 이제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감방 문턱까지 닿아 있다. 미국 인기 정치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도 이렇게까지 속도감 있었나 싶다.

줄줄이 포승줄에 손목이 묶이는 이들을 보며 조지 오웰을 떠올렸다. 4년 간격으로 세상에 나온 ‘동물농장(1945년 출간)’과 ‘1984(1949년 출간)’는 모두 권력과 통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수레바퀴가 돌듯 되살아나는 권력이라는 섬뜩한 결말을 담고 있다. 그는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역사 속에서 좌절했던 것일까.

‘동물농장’의 배경이 되는 농장에서 돼지들은 가장 똑똑한 존재다.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동물들을 조직해 혁명을 모의한다. 암말인 몰리가 인간이 달아주던 리본을 아쉬워하자 돼지 스노볼은 혁명 정신을 가질 것을 다그친다. 결국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낸다. 돼지들은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로 시작하는 7가지 계명을 헛간 벽에 엄숙하게 적는다.

섬뜩한 결말은 이때부터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자기들끼리 세력 다툼을 빚고, 결국 스노볼을 몰아낸 돼지 나폴레옹이 독재를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동물들은 다시 고된 일을 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인간처럼 두 발로 서서 걷는다. 헛간 벽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계명만이 남겨져 있다.

책이 나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우리가 정치를 보며 느낀 좌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권과 정당 간판이 바뀌었지만 부조리는 이어졌다. 인간이 나폴레옹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마지막 권력의 리본을 달고 있던 이들이 포승줄을 매달게 됐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오웰처럼 우린 다시 좌절하게 될까.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동물농장#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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