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치매 노숙자 신원 찾아주는 경찰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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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찰청 근무 이철한 경위, 노숙자 재활시설 ‘은혜의 집’ 인연
지문감식으로 신원 확인 입소 도와

이철한 경위가 17일 은혜의 집에서 생활하는 70대 노인을 상담하며 그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경위는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 채취에 앞서 상담을 통해 노인들의 불안감을 없애려 하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제공
이철한 경위가 17일 은혜의 집에서 생활하는 70대 노인을 상담하며 그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경위는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 채취에 앞서 상담을 통해 노인들의 불안감을 없애려 하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제공
“신원을 확인해 가족을 찾아보고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17일 오후 인천 서구 심곡동 노숙자 재활 시설인 ‘은혜의 집’ 상담실. 인천지방경찰청 광역과학수사2팀에서 근무하는 이철한 경위(45)가 70대 할아버지의 손가락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이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선 신원 확인 절차부터 거쳐야 한다. 70대 할아버지는 오랜 노숙 생활에 따른 치매 증상을 보여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경위는 신원조회서에 열 손가락 지문을 정성스럽게 찍은 뒤 할아버지를 돌려보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지문자동검색시스템을 활용해 신원을 확인한 뒤 은혜의 집에 통보해 주면 된다”며 “지문 상태가 좋으면 30분 정도면 신원이 밝혀지지만 지문이 닳거나 손상된 경우 1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위는 2000년 서부경찰서 과학수사팀에 발령받으며 은혜의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과 같은 증거물을 찾아 범인을 추적하는 업무를 하다가 어느 날 은혜의 집으로부터 행려병자 신원 확인 요청이 들어왔다.

이 시설에 들어가려는 노숙자 가운데 상당수가 치매나 정신장애 등으로 이름이나 나이, 주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지방자자단체가 지원하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경위는 은혜의 집을 방문해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 일을 17년째 하고 있다.

이 경위는 보통 2주일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은혜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노숙자의 생명이 위독해 신원 확인 요청이 들어오면 밤에도 달려간다. 그가 지금까지 신원을 확인해 준 노숙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연락처를 파악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노숙자가 100여 명이다. 가출이나 실종 신고가 접수된 노숙자의 경우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이 바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한 뒤 데려간다. 2005년 70대 할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게 연락한 결과 자식들이 17년 동안 찾아다닌 노인이었다. 가족이 만나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렵게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부모나 자식들에게 연락하면 대부분이 “연락 끊고 사는 지 오래됐으니 알아서 하라”고 응대한다. 이 경위는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물을 찾아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도움을 주는 것도 경찰관이 해야 할 일이다. 정년을 맞을 때까지 은혜의 집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노숙자#노숙자 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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