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리듬체조 ‘포스트 손연재’ 플랜은 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20일 05시 45분


은퇴를 선언한 손연재.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은퇴를 선언한 손연재.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플랜은커녕 각종 비리 연루 ‘빈축’

‘리듬체조 요정’이 떠났다. 혼신과 열정을 다한 17년의 시간을 뒤로 한 손연재(23·연세대)는 “울컥하지만 후회는 없다. 단단하고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은퇴소감을 전하며 땀 젖은 매트에서 내려왔다. ‘늘품체조’ 시연회 참석으로 근거 없는 루머에 시달렸지만, 그녀의 묵묵한 ‘외길 도전’은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이제는 ‘포스트 손연재’를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러나 한국리듬체조의 현실은 여전히 어둡다. ‘될 성 부른’ 꿈나무도 있고, 인프라도 서서히 갖춰지고 있으나 긍정적 변화는 사실상 없는 듯하다. 당장 체조계, 나아가 체육계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2015년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포착된 대한체조협회(회장 한찬건·포스코건설 대표이사) 핵심 인사 3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2014년 리듬체조대표 선발전에서 8위에 오른 선수를 단체전 대표(6명)로 뽑고, 이듬해 특정선수를 뽑기 위해 선발 기준 중 하나인 몸무게 규정을 바꾼 혐의다. 검찰에 송치된 인사 3명 중 2명은 여전히 협회 임원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리듬체조대표 선발 비리 실무자였던 이들을 최근 체육회 임원으로 선임했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공교롭게도 ‘검찰 송치’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존 인사가 취소됐다는 등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은 전혀 없다.

상당수 체조인들은 “비리 의혹을 받는 임원들이 기존처럼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이 과연 정상적이냐”며 한탄하고 있다. 한 리듬체조 관계자는 “‘제2의 손연재’는커녕, 조금이나마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조차 성장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이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인사는 “심각한 부정부패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틈을 탄 부끄러운 (체육)행정이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듬체조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가대표 선발 비리들로 구설에 올랐고, 전직 체조협회 간부는 리듬체조대표 코치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국제대회에서 팀 경기가 사라졌다는 기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선수들을 파견해 빈축을 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감시의 눈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대표 선발 비리 수사의 연장선에서 최근 경찰이 자신의 국제대회 참가에 맞춰 국가대표선수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갈취) 혐의로 체조협회 요직을 두루 거친 리듬체조 심판을 내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잘못된 관행은 뿌리 뽑아야 한다. 적극적 자정 노력과 의지가 없는 한, ‘제2의 손연재’는 결코 나올 수 없다.

남장현 스포츠1부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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