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의 전설’ 숀 화이트 “평창서 반지 받으면 새끼손가락에 끼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9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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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올림픽 금메달만 두 개,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로 X게임 메달만 24개를 목에 건 하프파이프의 전설 숀 화이트(31·미국).

압도적인 높이의 공중점프와 여유 있는 회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으로 뒤덮인 ‘올블랙’ 패션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경기장에서 ‘숀 화이트 어디 있냐’고 물으면 코치들은 “얼굴까지 다 시커멓게 가린 사람 ”이라고 답할 정도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테스트이벤트 예선을 마친 17일 저녁 화이트는 이례적으로 보라색 슈트를 빼입고 나타났다. 다른 나라 코치들까지도 ‘숀 화이트 맞느냐’고 물어볼 만큼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대회 때 슈트를 따로 들고 다니느냐 물으니 그는 큰 입을 활짝 벌리며 웃더니 “다 한국 와서 샀다”고 했다. 그는 예선 전날 휴일을 이용해 동대문에 다녀와 슈트 4벌과 코트 2개, 가족들 선물까지 잔뜩 사왔다. 그는 “한국 옷들이 나에게 너무 잘 맞는다. 휴일에 가서 더 사올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본선 전날에도 평창에서 3시간 차를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다녀올 정도로 서울에 푹 빠져있었다.

늘 장난기 많고 무대 위에서 자신감 충만한 그지만 화이트 역시 늘 긴장과 염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경기 때 올블랙 패션을 고수하는 이유기다. 평소에도 검정색 올을 즐겨 입어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올블랙 패션은 일종의 징크스이기도 하다.

“X게임에서 한번 빨간 자켓을 입어본 적이 있는데 성적이 별로였다. 그래서 절대 안 입는다.”

이름처럼 ‘하얀색’은 어떠냐는 물음에 웃음이 터진 화이트는 “너무 더러워질 거다. 기회가 되면 ‘블랙 앤 화이트’는 시도해보겠다. 멋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에서는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다.

토리노,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소치에서 4위에 머무르며 3연속 금메달의 영광을 놓쳤다. 양 손에 하나씩 두 개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반지를 끼고 있는 그는 평창에서 세 번째 반지를 받을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평창에서 반지를 받으면 새끼손가락에 끼겠다”고 했다.

올림픽까지의 여정은 그에게도 긴장되는 일이다. 그가 평창올림픽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 코리아’라는 다큐를 찍기 시작한 이유다. 다큐멘터리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 한국에서의 추억을 담는다. 한국의 궁, 쇼핑단지와 테스트이벤트 모습, 평창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 등을 모두 담았다.

동시에 그는 스노보드 선수로서 자신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스노보드 선수의 삶으로 겪는 모든 부분을 찍는다. 물론 이 기사를 위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올해 초 마취를 하고 발목 수술을 받는 것도 가감 없이 모두 찍었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이 다큐멘터리는 내년 1월 개봉이 목표다.

이미 스노보드 선수로서 이룰 걸 다룬 화이트다. 그는 X게임에서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로 모두 우승한 최초의 또 유일한 선수기도 하다. 스케이트보드뿐 아니라 패션 사업, 밴드 , 공연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재다능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스노보드는 역시 그의 가장 큰 관심사다. 그는 “눈 밖에 있을 땐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겨울마다 다시 스노보드에 집중할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말한다.

17일 예선에서 혼자 90점을 돌파하는 ‘클래스’를 보여줬던 화이트는 19일 열린 결선 1차런부터 또 한번 95점의 고득점을 받으며 무난히 우승을 가져가는 듯 했지만 ‘우승 세리머니’로 즐길 줄 알았던 마지막 3차런 직전 호주의 스코티 제임스(23)가 96점의 무시무시한 점수를 받으며 은메달에 족해야 했다. 화이트로서는 1차런에서 실수 없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2위에 그쳤기에 자존심이 단단히 상할 법한 일.

“요즘에는 선수들이 하도 잘해서 예선에서도 더블콕 두 개 정도 하지 않으면 결선 진출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넉살을 떤 그는 “(3런으로 치러지는) 올림픽에서는 더 많은 기술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멋진 새 트릭을 배워보겠다”고 말했다.

화이트는 경기를 마친 19일 저녁 곧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20일부터 있을 이벤트를 준비한다. 이제 남은 그의 한국방문은 2018년 평창 올림픽뿐이다. 내년 이맘때 그의 새끼손가락에는 또 하나의 금메달리스트 반지가 끼워져 있을까.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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