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언론 “한국 최대 기업, 글로벌 이미지 타격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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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 부회장 구속]삼성, 비상경영 체제 돌입

무거운 발걸음 총수 구속 사태를 맞은 삼성 임직원들이 17일 오전 무거운 분위기 속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무거운 발걸음 총수 구속 사태를 맞은 삼성 임직원들이 17일 오전 무거운 분위기 속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삼성그룹은 16일 밤까지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삼성 수뇌부는 이날 오후 9시부터 이 부회장의 체어맨 차량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 대기시킨 채 서울 서초사옥에서 그의 복귀를 기다렸을 정도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영장실질심사 이후 분위기를 파악해본 결과 ‘51 대 49’로 영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총수 구속’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은 17일 하루 종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구속은 창업 79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삼성은 구속된 이 부회장이 앞으로 특별검사팀에 소환될 때 호송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전 세계로 보도될 수밖에 없어 엄청난 글로벌 이미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200조 원의 매출액 중 9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삼성은 총수 구속으로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 FCPA는 미국 기업이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지만 2008년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제재 대상이 되면 과징금 처벌은 물론이고 미국 내 공공 조달사업에서 퇴출당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플 같은 글로벌 경쟁자들이 소비자 단체를 동원해 해외부패방지법 적용을 부추기면 삼성의 미국 내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것 같은 대형 인수합병(M&A)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해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고민이다. 삼성 주요 주주인 해외 연기금이나 일부 대형 펀드는 뇌물죄를 저지른 기업에는 투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는 “이번 구속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회사 오너의 승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례적인 조치”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갤럭시 노트7’ 단종 이후 모바일 사업의 회생을 위해 고군분투한 한국의 가장 큰 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은 이날부터 즉각 미래전략실 중심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오후 늦게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이날 오전 이 부회장을 가장 먼저 면회해 앞으로의 수사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계획됐던 미래전략실 해체 등 삼성의 쇄신 프로젝트는 모두 미뤄지게 됐다. 올해 상반기(1∼6월)는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려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를 인적 분할해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기됐다. 삼성은 2013년부터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벌여 왔다.

다음 달 열릴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처음 참석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기소 후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해 이사회 중심 경영을 펼치려던 계획이었다.

글로벌 행보도 불가능해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내려진 출국금지 조치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의 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다음 달 23일 중국에서 개막하는 ‘보아오 포럼’ 참석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2013년 이 포럼 이사를 맡아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연을 맺어왔다.

충격은 삼성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으로 퍼졌다. SK, 롯데, CJ 등 특검 수사 대상으로 언급됐던 기업들은 다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한 특검은 이날 “다른 대기업 수사는 수사 기간 연장과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특검 대응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하는 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수사 대상 기업들은 자칫 특검을 자극할 수 있어 대응 논리가 있어도 말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그룹 조직 개편과 인사를 확정 발표할 예정이던 롯데그룹도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그룹 쇄신안의 핵심이었던 호텔롯데 상장 역시 당초 상반기에 추진하려던 목표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김지현 jhk85@donga.com·서동일·이새샘 기자
#삼성#이재용#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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