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항공기 비상구가 위험하다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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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좌석 있어요?”
항공기 비상구 좌석은 이코노미석 승객들에게 일명 ‘꿀 자리’로 불린다. 공간이 넓고 장애물이 설치돼 있지 않아 다리를 편하게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직 승무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승객이 탑승 수속 카운터에 와서 제일 먼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비상구 자리 있어요?”다.

하지만 마냥 좋은 자리는 아니다. 항공기 비상구 좌석에 앉은 승객은 비상 상황에서 승무원과 함께 승객의 탈출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고, 승무원들과 함께 맨 나중에 탈출해야 하기 때문. 국토부 운항기술기준에 따르면 비상구 좌석에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등은 앉을 수 없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건만 대부분 내가 탄 항공기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선호한다.

이렇게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요건이 엄격한 가운데 일부 저비용 항공사들은 승객이 추가요금을 내면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지정좌석 유료서비스’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에서는 5000원~2만 원을 내면 맨 앞자리나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2015년에는 티웨이항공에서 비상구 좌석에 만 15세 미만인 어린이 승객을 배정했다가 과징금으로 2500만 원을 물었다. 티웨이항공 측은 “승객 좌석 배치를 서류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며 “실제로 어린이를 비상구 좌석에 앉히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국토교통부는 항공기 1편당 500만 원씩 총 2500만 원의 과징금을 이 항공사에 물렸다.

비상구가 열리고 슬라이드가 펼쳐지는 순간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구가 비상 상황이 아닌데 열리면 어떻게 될까.

2월 5일 오후 베트남 다낭행 대한항공 KE463 항공기의 비상구가 강제 개방되는 소동이 있었다. 60대 여성이 비상구 레버를 화장실 문손잡이로 착각해 잡아당긴 것이다. 당시 이 항공편은 출발 예정 시각보다 20분 늦은 오후 7시에 인천공항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비상구가 강제로 열리며 탈출용 슬라이드가 활주로 쪽으로 펴지는 바람에 제때 이륙할 수 없었다. 항공사 측은 승객들을 대체 여객기로 옮겨 태우고 오후 10시경 이륙했다.

비상구를 개방한 여성은 공항 경찰대로 인계됐고 문을 연 경위를 조사받았다. 대한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해당 승객이 비상구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비행기를 처음 탄 분이었고 비상구 개방에 고의성이 없어 처벌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승무원이 이륙 전 마지막으로 기내를 체크하던 중에 벌어져 저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당한 이유로 비상구가 열린 게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15년 4월 후쿠오카행 에어부산 항공기 BX142편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다 비상구가 개방되는 바람에 램프리턴 하는 일이 있었다. 비상구 쪽 자리에 앉아 있던 70대 승객이 창문을 열기 위해 슬라이드 레버를 당기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이 때문에 항공기가 2시간 20분가량 지연됐다. 당시 에어부산 측이 비상구 좌석에 70대 노인을 앉게 한 것부터가 잘못이란 지적이 나왔다.

2014년 12월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는 50대 승객이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다며 샤먼항공 소속 여객기 비상구를 여는 바람에 항공기 이륙이 지연됐다. 2015년 1월에는 중국 쿤밍공항에서 동방항공 MU2036 여객기가 이륙 직전 비상구가 강제 개방되는 바람에 회항하는 일도 있었다. 비행기가 7시간 정도 늦게 출발한 데 불만을 품은 승객들이 비상구 3개를 열어 제친 것이었다. 현지 공안당국은 비상 탈출구를 연 당사자들에게 구류 15일 처분을 내렸다.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상구를 열려다 승무원과 승객들에게 제지당하는 일도 있었다.
2005년 11월에는 홍콩을 출발해 호주로 향하는 케세이 퍼시픽 항공기에 탑승한 술에 취한 프랑스 여성이 비상구를 열고 담배를 피우려다 승무원에게 제지당하는 일도 있었다. 호주 경찰은 이 여성을 브리즈번 공항에서 체포해서 재판에 넘겼고, 브리즈번 치안법원에서는 이 여성에게 보석금 1000호주 달러를 책정했다.

2015년 12월에는 “알라신을 만나겠다”며 운항 중이던 항공기 안에서 비상문을 열려고 한 남성이 승무원과 승객들에게 저지당하고 당국에 넘겨지기도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이륙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향하던 루프트한자 항공기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까지 비상구가 열린 사건을 살펴보면 모두 항공기 이륙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륙 후 높은 상공에서 비상구가 열리는 일도 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지만 그럴 일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상구는 이륙 시 기압차 때문에라도 열릴 일이 없다. 이륙 전후로 모드를 바꾸지 않으면 비상구를 열어도 슬라이드가 펼쳐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비상 상황이라 비행기가 바다 위에 비상 착륙 했을 때에는 승무원이 조작하면 비상구가 열린다.

비상구를 열었을 때 당사자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고의성에 따라 달라진다. 현직 항공사 승무원은 “고의로 비상구를 열었는가, 모르고 실수로 열었는가에 따라 대처가 달라진다. 고의로 비상구를 열어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빚은 경우 항공사에서 해당 승객에게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탑승 거절 승객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향후 해당 항공사 정상 이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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