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고정표’ 확 줄어든 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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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국]유권자 48% “나는 중도성향”… 지난 대선때 33%에서 껑충
중도층 78% “반드시 투표하겠다”… 무관심층 아닌 ‘조건부 지지층’
사안별 정책대안 중요성 부각

대선 후보마다 중도층 구애가 뜨겁다. 이는 기존의 선거 공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역대 대선에선 ‘선거 초반 이념적으로 선명성이 뚜렷할수록 유리하다’는 공식이 통용됐다. ‘경선에선 집토끼, 본선에선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중도를 표방한 후보는 주목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정권을 손에 쥐지 못한다는 게 그동안 대선의 불문율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이 공식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상승세가 단적인 예다. 안 지사의 지지율 급등엔 중도층의 지지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안 지사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협상을 존중해야 한다”는 등 중도 보수를 겨냥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 확장 전략’에 주력해 온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최근 사드 반대 입장을 철회하는 등 안 지사와의 중도 경쟁에 본격 가세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도발에 이어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안보 이슈가 대선 정국을 강타하자 ‘안보 보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도 최근 같은 당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중도층으로 확장 가능성은 내가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의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역시 “저 같은 정치인이 개혁적 보수로서 역할을 하길 바라는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중도 공략’에 나서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중도의 덩치’가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가 17, 18대 대선을 3∼4개월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서 자신이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는 각각 29.8%와 32.5%였다. 반면 이달 3, 4일 실시한 조사에선 그 비율이 47.8%로 껑충 뛰었다.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중도를 표방한 것이다. 실제 중도층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매년 1월 1∼3일 실시한 이념 성향 분포 조사에 따르면 중도층 비율은 2013년 38.8%에서 올해 46.0%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중도층이 두꺼워진 이유를 극심한 이념 대결의 ‘반작용 효과’로 본다. 진보-보수 정권을 10년씩 거치면서 이념 대결에 신물이 난 국민이 어느 한쪽에 속하기를 거부한다는 얘기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양극단의 이념 싸움이 치열해지면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그 반작용으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세헌 경북대 교수는 “이런 ‘회피 중도층’의 성격상 감동을 주는 메시지 한 방에 지지율이 확 쏠릴 가능성이 있다”며 “중도층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지지율 반등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중도층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중도층은 정치에 관심이 적은 무관심층이 많았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중도층 표심은 표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 중도층은 ‘안보=보수, 경제=진보’처럼 현안별 선택이 다를 뿐 정치적 무관심층과는 구별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2월 R&R 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중도층은 77.5%에 달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결국 대선 후보 입장에선 유권자를 보수냐, 진보냐로 단순화하기보다 사안별로 더 많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맞춤형 대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대선#중도#유권자#고정표#보수#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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