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여성학 연구로 한평생… 정년퇴임 앞둔 두 교수의 ‘마지막 강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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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하지만 연구는 계속된다.’ 2월은 대학에 몸담은 교수들이 정년을 맞이하는 달이기도 하다. 평생 연구에 정열을 쏟고 퇴임하는 두 교수를 동아일보가 만나봤다.》
 

●노명호 서울대 교수 “한국의 저력은 다양성에 기초… 정파간 의견 합쳤을때 강해져”

고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명호 교수는 “고려는 선진문화에 개방적이면서, 고대부터 내려오는 사회문화적 장점을 살렸기에 문화가 개성적이고 위상이 높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명호 교수는 “고려는 선진문화에 개방적이면서, 고대부터 내려오는 사회문화적 장점을 살렸기에 문화가 개성적이고 위상이 높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려시대 부모 봉양의 의무와 재산 상속을 비롯해 친족제도에서 남녀 차별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은 상식이다. 그러나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66)가 1980년대 연구를 통해 밝히기 전에는 고려도 그저 조선 후기처럼 종법(宗法)적인 부계중심사회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고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 교수를 14일 만났다.

“1970년대 중반 집대성되던 인류학의 친족제도 연구를 접하고 고려시대를 들여다봤더니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이 중심인 ‘양측적(兩側的) 친속(親屬)관계’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에만 존재한 겁니다. 친족제도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근간이 되고, 어지간해서 잘 변하지 않거든요. 이게 고대, 고려, 조선이 다 다르다는 건 한국사가 일본 학자들의 시각과 달리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을 밝힌 거지요.”

단재 신채호가 고려시대 정치사상을 국풍―화풍, 자주―사대의 구도로 봤던 것과 달리, 천하 다원론(多元論)자들이 고려의 국정을 대체로 주도했다는 사실도 노 교수가 밝혀냈다.

노 교수는 “고려시대 동아시아는 명·청이 주도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적인 다극체제”라며 “다극체제에서 한쪽에 치우친 외교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화이론(華夷論)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강국 한곳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고려 성종 대 요나라를 무시하고 송나라에만 의존하다가 거란이 침입해오니 사실 파악도 하기 전에 북방의 영토를 떼 주자고 주장합니다. 반면 천하 다원론자인 서희는 거란의 의도를 파악하고 담판을 통해 오히려 압록강 하류 영토를 확보하지요.”

노 교수는 무리하게 금나라 정벌을 주장한 묘청 일파처럼 국수주의자들도 이념에 휘둘린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천하 다원론자들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대체로 사실 파악을 잘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노 교수는 “역동성이 한국사의 기본 흐름이고 역동성은 다양성에서 나왔다”며 “다양함 속에서도 정파 간에 아는 것, 불확실한 것, 모르는 것을 구별해 가며 의견을 합치했던 때는 위기를 잘 넘겼고, 모르거나 불확실한 것도 아는 것처럼 대응하면 국가가 굉장한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고려 태조릉인 북한 개성의 헌릉에서 나온 동상이 불상이 아니라 태조 왕건의 동상이라고 밝혀낸 일, 수십 조각으로 찢긴 석가탑 중수문서를 이론의 여지없이 복원하고 판독한 일을 비롯해 그의 연구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퇴임 후에도 고려 친족제도 연구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새로운 이해’ 등 당장 집필 예정인 책이 여럿이라고 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성희롱이란 말 생긴지 얼마 안돼… 남녀평등, 법 갖춰야 사회도 변해”

2017년의 여성학 이슈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재경 교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일수록 차별을 받는 현실에서 젠더 민감성뿐만 아니라 ‘계급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17년의 여성학 이슈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재경 교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일수록 차별을 받는 현실에서 젠더 민감성뿐만 아니라 ‘계급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차별’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 무렵 등장한 여성주의자들이 성차별 담론을 제기하면서 한국 사회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여성학자로 살아온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가 27일 퇴임을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났다.

“6·29 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스트들의 이슈는 반정부·민주화였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민주화’에서 ‘젠더’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입니다. 그때 이화여대에 부임했는데 벌써 25년이 흘렀네요.”

이화여대 사회학과 70학번이던 그는 학부 때 한국의 1세대 여성학자 이효재 교수를 만났다. “이효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여성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석사 논문을 ‘가족’에 관해 썼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학은 소수 학문이었습니다.”

그가 여성학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성희롱, 가정폭력 등과 같은 단어는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따로 ‘범죄’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sexual harrassment’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들어왔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을 정도였어요.”

1980년 이후 여성사회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각종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남녀고용평등법’은 1989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997년, 그리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권리를 인정한 호주제 폐지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옛날엔 남편이 아내를 구타해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처럼 심각성을 흐리는 말들만 오갔죠. 법과 제도를 먼저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교육도 되고 의식화가 됩니다.”

이 교수는 최근까지도 ‘한국 근대의 여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6·25전쟁 이후 분단, 개발독재 아래 여성들의 모습을 구술로 조명했다. 서구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은 근대로 접어들고 핵가족화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지만 한국 여성들은 달랐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여성들은 미장원, 계, 공부방 과외 등 가족 생계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서구 이론을 뒤집는 결과죠.”

2010년부터 5년간 진행된 연구는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돼 현재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여성 문제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실제 생활이 어땠느냐의 문제는 간과됐습니다. 여성들의 미시사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해도 여성학자이기에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고려사#여성학 연구#노명호#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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