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대권주자의 천도 공약, 대통령의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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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건설된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에 건설된 행정중심복합도시.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이대로라면 차기 정부에서 명실상부한 천도(遷都)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대선 주자들이 너도나도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 이전론은 올 정초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세종시를 정치·행정수도로 완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불이 댕겨졌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등 유력 대선 주자들도 덩달아 행정수도 이전론에 동참하고 있다. 아직 대선 주자가 정해지지 않은 여권만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이제는 청와대와 국회 등 국가 중요 기관의 세종시 이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삼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역대 정권에 걸친 큰 숙제거리였다. 그렇게 해묵은 수도 이전론이 현 시점에서 또다시 호응을 얻는 이유는 뭘까.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통(不通) 청와대’ 비판 여론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잖아도 역대 대통령들의 과오를 청와대 터와 연결짓는 풍수적 해석이 적지 않던 참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진 민심 이반과 충청도를 의식한 ‘대선 표퓰리즘’ 등이 가세해 천도 정국이 펼쳐진다고나 할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부 수립 이후 천도를 강력하게 추진하거나 부분적으로나마 실천에 옮긴 권력자들은 이후 한결같이 불행을 겪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백지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다 1979년 급작스럽게 서거하는 바람에 행정수도 이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충남 세종시에 신(新)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였으나, 2004년 위헌 판결을 받아 좌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탄핵 파동을 맞고 퇴임 후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등 불행을 겪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위헌 판결을 받은 행정수도의 대안으로 마련한 게 현재 세종시에 조성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다. 청와대와 국회 등은 그대로 두고 행정부처 일부만 이전하는 ‘기형적인’ 도시 건설에 대해 반발도 적잖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부처 이전 강행을 강력히 주장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더욱 힘을 실었다. 박 대통령은 현재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수도 이전 정책과 전·현직 대통령들의 불운(不運)을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따지기는 어렵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조선시대 때 천도를 주장한 왕들의 운명은 어땠을까.

조선 역사에서 ‘천도 카드’를 꺼내든 왕은 광해군과 정조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도성의 왕기(旺氣)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교하(현재 경기 파주시 일대)에 새 도성을 세워야 한다며 천도를 밀어붙였지만 실패했다. 이후 광해군은 왕에서 폐위되고 ‘군(君)’으로 강등되는 치욕을 겪었다. 광해군에 이어 정조는 공개적으로 천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왕도(王都)를 연상시키는 수원화성을 건축하는 등 천도에 버금가는 일들을 직접 실천했다. 그러나 정조는 수원화성을 완성한 지 4년 만인 1800년 4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독살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천도를 추진한 권력자들의 단명 혹은 정치적 몰락의 배후에는 천도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 세력이나 정치적 반대 세력의 저항이 만만찮게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명분이 뚜렷하고 민심을 얻어야 한다. 풍수적으로는 도읍의 지기(地氣)가 수명을 다하고,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천기(天氣)가 변해 명분이 서고, 민심이 함께 변화를 원할 때 천도가 이뤄진다고 본다.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과 지방 균형발전, 효율적인 행정 집행 등 일정한 명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사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민심의 결집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남북통일을 앞두고 새로운 행정수도 모색이라는 거시적, 미래적 접근법이 명분과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서울의 지기가 아직도 수도 기능을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실천하는 세계적 지도자 배출을 위해 준비된 청와대 터 또한 기세가 아직 등등하다. 서울을 수호하는 한양기지신(漢陽基址神)이 “서울의 땅심은 살아 있고, 경복궁이 두려워 떠나려 하는 정치인은 주인 자격이 없다”라고 필자의 귀에 외치는 듯하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천도#서울#한양기지신#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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