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미란다 원칙과 진술거부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경찰과 범인이 등장하는 수사물에서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이야말로 단연 결정적 장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수사 끝에 범인을 체포하는 순간, 범인을 쏘아보는 수사관의 눈빛은 냉정하고 수갑을 채우는 손놀림은 단호하기 그지없지만 그의 입에서는 난데없이 존댓말이 흘러나옵니다.

“당신에게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당신이 말한 것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란다 원칙. 미란다 원칙이라는 말 자체는 생소할 수도 있지만 체포 현장에서 읊조리는 경찰관의 저 대사는 이제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풍경입니다.

미란다 원칙은 1960년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확립된 원칙입니다. 납치·강간 혐의로 체포되었던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수사를 받는 동안 자신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고지받지 못한 채 자백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당시 이 판결이 가져온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수사 일선에서는 범죄 수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면서 반발이 심했습니다. 법원이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보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에만 치중했다는 비난도 거셌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경찰은 미란다 경고문(Miranda warning)을 만들어 범인을 체포하거나 신문할 때 이를 낭독하도록 했고, 범죄자들이 이 판결 때문에 무죄 석방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헌법 제12조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제2항),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제4항), 체포·구속되는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않고는 체포 또는 구속당하지 않을 권리(제5항)가 모든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헌법상의 권리는 형사소송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됩니다. 수사기관은 범죄사실이 무엇인지, 체포 또는 구속하는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의 기회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고(형사소송법 제200조의 5, 제200조의 6), 범인을 신문하기 전에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 이를 포기하고 진술한 것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범인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냐며 혀를 차기도 합니다. 그 범인이 무죄 방면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범인이 입을 다물었다는 이유로 무죄 방면되는 비극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그에게 진술거부권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유죄라는 증거가 부족한 탓이라 할 것입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미란다 원칙#진술거부권#묵비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