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그래미 시상식서 진짜 ‘대인배’를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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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맑음. 구원. #239 Megadeth ‘The Threat is Real’ (2016년)

12일(현지 시간) 그래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메가데스.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오른쪽)은 군자의 미소를 지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12일(현지 시간) 그래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메가데스.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오른쪽)은 군자의 미소를 지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진짜 ‘대인배’를 보았다.

12일(현지 시간) 그래미어워드에서다. 아델, 비욘세가 수놓은 본시상식 말고. TV로는 중계도 되지 않은 사전 세부 장르 시상식에서. 주인공은 미국의 4인조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 아시다시피 메가데스는 메탈리카의 숙적이다. 오래전부터 품은 원한, 즉 구원(舊怨)이란 어려운 단어는 이럴 때 쓰면 좋다.

메가데스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은 원래 메탈리카 멤버였다. 그것도 창립멤버. 근데 그는 1983년 4월 11일 다른 멤버들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당한다. ‘못 말리는 약쟁이’라며 머스테인을 내보낸 메탈리카는 엑소더스란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커크 해밋을 들였다.

무협지나 대하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이럴 때 떨쳐 일어선다. 머스테인은 소림사로 들어가는 대신에 이름도 무시무시한 메가데스를 결성한다. 머스테인의 신랄하고 냉소적인 창법과 가사, 드라마틱한 악곡으로 무장한 메가데스는 폭풍처럼 성장해 메탈리카의 대항마로 떠오른다.

메탈리카가 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메가데스에 더 열광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메탈리카는 지옥으로!’를 외치며 머스테인의 시니컬한 살쾡잇과 창법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유튜브로만 공개된 12일 장르별 그래미시상식은 그래서 메가데스에게 눈물의 무대였다. 메가데스는 그동안 그래미 후보에 열한 차례나 올랐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 그것도 메탈리카가 여덟 번이나 트로피를 낚아채는 동안…. 11전 12기의 첫 트로피. 그러나 진행자 마거릿 조가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 부문 수상자로 “메가데스!”를 호명했을 때 그들 앞에는 붉은 카펫 대신에 눈물의 전주곡이 펼쳐졌다. 무대 위 밴드가 ‘하필’ 축하곡으로 연주한 게 메탈리카의 대표곡 ‘Master of Puppets’였던 것이다.

메가데스 멤버들은 ‘하필’ 객석 저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대까지 도보로 무려 1분. 걸어 나오는 동안 메탈리카의 곡은 그치지 않았다. 머스테인은 이동 중 카메라를 향해 이 곡에 맞춰 기타 연주를 하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이 썰렁하고 민망한 장면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한편 메가데스의 저주였을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던 본시상식에서 메탈리카는 공연을 망쳤다. 레이디 가가와 신곡 ‘Moth into Flame’을 부르는 동안 리더 제임스 헷필드의 마이크가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헷필드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조용히 마이크스탠드를 발로 걷어찬 뒤 기타를 집어던졌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megadeth#the threat is real#그래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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