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절벽에… 졸업앨범 안찾고 선후배간 ‘반지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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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씁쓸한 졸업식 풍경

서울의 한 사립대 정치외교학과는 올해 졸업앨범을 만들지 않았다. 졸업예정자가 50명 가까이 되지만 지난해 앨범 제작에 필요한 최소 인원 5명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졸업생들은 “취업을 못 해 갈 곳이 없는 마당에 졸업앨범은 사치”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가의 졸업시즌이지만 취업한파로 인해 훈훈했던 풍경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취업난 때문에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대학생활을 추억할 수 있는 앨범조차 찬밥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상황이 어렵기는 재학생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선배에게 챙겨주던 졸업선물을 놓고 소송 직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 “졸업식도, 졸업앨범도 사치”

학생들이 졸업앨범을 포기하는 이유는 일단 비용이다. 보통 5만∼8만 원 상당의 앨범 비용은 기본. 여기에 의상과 메이크업 등 촬영 준비에 드는 돈도 만만찮다. 졸업식을 앞둔 대학생 권모 씨(26)는 “학자금 대출만 해도 수천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옷과 구두 메이크업 비용 써 가며 졸업앨범을 어떻게 찍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경제학과 졸업예정자인 성모 씨(25)도 졸업앨범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입사할 곳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웃으면서 졸업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며 “신청 기간이 언제였는지, 사진 촬영을 언제 진행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다”며 씁쓸해했다. 성 씨의 머릿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매달 50만 원씩 용돈을 받는 취준생(취업준비생) 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졸업앨범 신청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연세대는 최근 3년 동안 졸업앨범 신청자가 300∼400명씩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서강대는 올해 졸업생 약 1300명 가운데 500명 정도만 앨범을 신청했다. 지난해에는 700명가량이 신청했다.

○ 졸업선물 때문에 얼굴 붉히는 선후배

장기 불황으로 졸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들도 취업한파 영향에 놓이면서 각자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자, 선후배들이 돈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민망한 일도 일어나고 있다. 후배들이 돈을 모아 졸업생에게 기념반지를 선물하는 관행이 남아있는 일부 학교나 학과에서는 법적 소송 얘기가 오갈 정도로 문제를 겪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이런 단체 졸업선물이 사라졌지만 선후배 관계가 밀접한 학과에서는 관행 폐지 여부를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최근 지방의 한 대학 간호학과 1학년 학생들은 졸업반지 문제로 선배들과 마찰이 불거져 변호사에게 법률상담을 받았다. 선배들이 후배들과 상의 없이 졸업반지를 주문한 뒤 후배들에게 비용을 강제로 내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간호학과 1학년 학생 A 씨는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먹튀’라고 부른다. 많게는 10만 원씩 내라는 경우도 있어 고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대 유아교육과도 졸업반지로 선후배 간 갈등을 겪었다. 한 학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선배들이 후배에게 반지 비용을 강제 할당했다”는 내용의 폭로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 글을 올린 후배는 “선배가 찾아와 반지 값을 내라며 욕설을 했다”면서 “선배가 근무하는 유치원에 후배들이 실습을 오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공갈·협박죄로 고소하려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학과는 현재 졸업반지 비용 모금을 중단한 상태다.

대학가의 졸업풍경은 갈수록 더 삭막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끝없는 취업 한파에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누릴 수 있었던 낭만이나 여유로움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 탓에 작은 금전적 갈등조차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극단적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야 best@donga.com·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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