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서울대 교수 “현대차 노조 ‘야리끼리’… 어마어마한 저항이 혁신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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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 진단 ‘가 보지 않은 길’ 출간

송호근 교수는 14일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송호근 교수는 14일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가 개발되면서 자동차 조립 공정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업장 규율은 1970, 80년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구시대적 조직이 만들어내야 하는 유례없는 모순에 봉착했습니다. 현재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실입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진단한 ‘가 보지 않은 길’(나남)을 펴냈다.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고의 기술력과 육체노동의 결합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현대차가 신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조립 공정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며 “공정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어마어마한 저항이 현대차의 혁신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년간 50여 명의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노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대자동차가 처한 위기를 진단한 그는 서문에서 “노동 문제를 푸는 열쇠가 고임금 정규직에게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는 따로 다루지 않았다”고 적었다.

송 교수는 “연 소득 9000만 원 이상인 그들은 실상 중산층이지만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이중적 정체성을 지녔다”며 “이는 ‘계급 연대’가 아닌 ‘내부자 연대’를 강화하는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조는 ‘고(高)임금, 소(少)노동, 장(長)고용’ 원칙만을 내세운다. 이로써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 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말은 ‘기업 역시 시민의 일원으로, 시민의 책무와 공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조직체’를 뜻한다. 송 교수는 “현재 대기업 사원이나 생산직은 시민이 아니다”라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내부 문제에만 몰두하는 노조는 제조업 전반에 위기를 몰고 왔다”고 지적했다.

시민의식이 실종된 노동조합의 행태는 ‘야리끼리’라는 은어를 통해 대변된다. ‘해치운다’는 의미의 일본말로 8시간 노동 분량을 5시간에 해치워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는 “컨베이어 속도를 마음대로 당겨서 빨리 해치우고 조기 퇴근을 하지만 비정규직은 예외”라며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을 가리키며 ‘절반만 일하고, 절반은 누워 잔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불황을 대비해 미리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의 경직된 노조 분위기에선 극심한 불황이 닥쳐야지만 구조조정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서 12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정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사양산업인 조선업계에 필요한 건 공적자금보다 구조조정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지금 살려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 달에 100만 원 받는 청소 노동자, 겨우 취업해도 200만 원 버는 청년 아니냐”며 “12조 원은 도덕적 해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고용 여력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 역시 경직된 노조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 한 현대차는 신규 채용이 아닌 해외 생산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량은 2001년 94.2%였던 데 반해 지난해 34.3%로 대폭 감소했다.

‘대화 능력’을 상실한 경영진의 태도가 현재 투쟁 일변도의 노사관계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경영진들은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 열정과 소명, 협동의식을 강조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 소통 방식”이라며 “돈을 더 줄 테니 ‘입을 다물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로 2000년대 이후부터 경영과 노동의 이별의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산직에게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기업 내부 조직구조 역시 ‘노사 이별’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일본의 도요타 시스템처럼 ‘기능장’을 뽑아 생산직 노동자에게도 승진과 경영 참여의 기회를 부여해 회사에 ‘주인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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