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원의 교육 속풀이] 5-5-2 학제로 바꾸면 한국교육 달라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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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예비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실을 둘러본 후 밝게 웃으며 복도를 걷고 있다. 동아일보 DB/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의 한 예비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실을 둘러본 후 밝게 웃으며 복도를 걷고 있다. 동아일보 DB/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노지원 기자
노지원 기자
《 안녕하세요. 저는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교육팀 노.지.원. 기자입니다. 앞으로 ‘교육 뒤풀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지면 밖에서 독자 여러분과 더 가까이 만나려고 합니다. 교육 정책 ‘뒷이야기’를 쉽게 ‘풀이’해드리려고 코너 이름을 ‘뒤풀이’로 정했습니다.

보통 행사를 마친 뒤 뒤풀이를 할 때 어른은 술을 마시죠. ^^; 술 한 잔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어깨에 들어간 힘도 살짝 풀어지는데요. 그래서 더 허심탄회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글을 쓰면서 술을 마시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앞으로 교육 뒤풀이를 쓸 때 기사보다 더 쉽게, 지면으로 전하기 힘든 부분까지 허심탄회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뒤풀이 주제는 ‘5-5-2 학제’입니다. 완성된 정책은 아니지만, 대선 행보에 나선 정치인이 제시한 교육 공약인 만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대선 후보들이 교육 관련 공약을 제시하면 교육 뒤풀이에서 시원하게 분석해보겠습니다. 혹시 ‘이것 좀 파헤쳐주면 좋겠다’ 싶은 교육 관련 정책(혹은 공약)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연락주세요. 자, 이제 첫 번째 뒤풀이 시작하겠습니다! 》

‘5-5-2 학제’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일단 학제란 ‘학교 교육 제도’를 의미하는데요. 현재 한국의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으로 ‘6-3-3 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5-2 학제’는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현재의 만6세에서 만5세로 당긴 뒤 재학기간을 5년으로 줄이고 중학교를 5년, 고등학교를 2년으로 한다는 새로운 학제 개편안입니다. 대선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육, 정말 학제가 바뀌면 달라질까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유럽 국가 학제와 닮은꼴

‘5-5-2 학제’는 유럽의 학제를 닮아 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2년)를 대입 준비하는 ‘진로탐색학교’와 취업을 준비하는 ‘직업학교’로 나누겠다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대학갈 학생과 취업 할 학생을 나누겠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초등 6년, 중등 5년의 의무 교육과정을 마친 뒤 고등학교 2년 동안 직업교육을 받을지, 대학준비교육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도 비슷합니다. 프랑스 학생은 초등 5년, 중등 4년을 거친 후 대학 진학을 원하면 일반고(3년제)로, 취업을 원하면 실업고(2년제)로 진학합니다. 핀란드는 초·중등 통합과정(9년)을 마친 뒤에 3년제 일반고에 진학할지, 2~3년제 직업학교에 진학할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하네요.

직업 교육을 잘 하기로 유명한 독일은 어떨까요. 독일은 초등학교 4년 과정이 끝난 직후에 자기 진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중등학교의 종류는 네 가지나 됩니다. 인문계중등학교(9년)에 가거나 직업학교(5년), 실업학교(6년), 또는 인문, 직업, 실험을 혼합한 종합학교(9년) 중 한 곳을 고르게 됩니다. 원래는 인문·직업·실업학교만 있었는데, 진로를 너무 어린 나이에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세 가지 성격을 종합한 학교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 직업학교, 특성화고와 어떻게 다르죠?

한국은 어떨까요. 안 의원이 제안한 학제 개편안의 핵심은 고등학교 2년 동안 대입 준비를 할지, 취업을 준비할지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건데요, 한국에도 이미 체계적으로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와 같은 학교입니다.

학생은 중3 2학기쯤 고교 진학을 고민하면서 대입을 위한 일반고에 갈지, 취업을 위한 특성화고에 갈지 결정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대학 입시를 위해 일반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2016년 기준 125만 여명으로 특성화고에 가는 학생(29만 여명)보다 많습니다.

학제 개편에는 적게는 수조 원, 많게는 십수 조원이 든다는데요. 개편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뀐다는 것인지, 직업학교는 특성화고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5-5-2 학제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취학 연령을 현재 만6세에서 만5세로 당기는 것입니다. 취학연령을 앞당기면 남학생들의 경우 군대도 1년 빨리 갈 수 있게 될 테니 그만큼 사회 진출도 빨라질 거라는 예측인데요. 진짜 그렇게 될까요?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대학 졸업 유예자의 수는 2011년 8200명에서 2014년 2만5000명으로 3년 만에 3배로 증가했습니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다고 진짜 취업을 빨리 하게 될까요. 그보다는 취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제 개편을 제안한 안 의원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공립 유치원 진짜 늘릴 수 있을까요?

5-5-2 학제 개편안에는 만3세부터 2년 동안 유치원을 공교육으로 편입해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공립 유치원을 늘린다는 건데요. 진짜 늘릴 수 있을까요?

현재 한국의 유치원 8987개 중 공립은 4693개, 사립은 4291개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립 유치원이 많은 편입니다. 프랑스의 유치원은 공립이 1만8646개이고 사립은 343개에 불과해요. 프랑스는 만3세 아동부터 국가 주도로 유치원 교육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의무 교육은 아니지만 유치원 취학률이 99% 이상이니 대부분의 아동들이 유치원에 입학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태까지 정부와 시·도교육청들은 공립 유치원을 증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사립 유치원의 반발 때문에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립 유치원 측이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사립 유치원을 놔두고 왜 공립유치원을 더 짓느냐”고 반발하기 때문이죠.

유치원을 공교육화하려면 사실상 사립 유치원들을 현재의 사립 초·중·고등학교처럼 ‘법인화’ 해야 하는데요. 과연 사유재산인 사립 유치원을 법인화하기가 쉬울까요. 개인이 운영하는 한국 사립 유치원의 원장 선생님들은 대부분 “사유재산을 왜 정부가 가져가려고 하느냐”며 사립유치원 법인화에도 반대합니다. 사립 유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초등학교 6년→5년, 교실 누가 쓰고 교사들은 어디로 가나요?

초등학교가 5학년으로 줄게 되면 한 학년분의 학교 시설(교실 등)과 교사가 남게 됩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교사를 과거와 똑같이 뽑는 게 맞느냐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학년 줄어들어 발생하는 유휴 공간과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교사 1명이 맡는 학생 수가 줄어들 테니 맞춤형 개별학습이 가능해져서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이미 한국의 초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7.3명, OECD 평균(15.2)에 비해 2명 정도 많습니다. 앞으로 학생 수가 더 줄어들 것을 감안하면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학습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초등 고학년을 중학교로 보내고 초등학교에서는 전인 교육에 집중하자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미 초등 4학년부터 학습 수준이 높아지고, 학습량 또한 늘어난다고 합니다. 6학년만 중학교로 보낸다고 초등 4·5학년이 공부를 덜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등학생의 학습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데, 한 학년을 줄임으로써 발생하는 유휴 자원과 인력은 이미 명백한 결과입니다. 남는 시설과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대안을 잘 마련해야 학제 개편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죠.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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