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 사진에 음담패설 댓글… 도 넘은 ‘키보드 성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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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선 다들 그렇게 논다”… 초등학생까지 죄책감 없이 가담
아이유에 막말 11명에 벌금형

초등학교 5학년 아들(12)을 둔 직장인 이모 씨(42)는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스마트폰을 갖고 놀던 아들이 한 걸그룹 멤버 사진이 올라온 게시글에 ‘맛있게 생겼다’고 댓글 다는 장면을 목격한 것. 이 씨를 더욱 경악하게 한 건 “인터넷 보면 다들 그렇게 하면서 논다”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아들의 반응이었다. 이 씨는 “아이가 한 행동은 성희롱이나 다름없는데 ‘장난 삼아 했다’는 아이의 태도가 무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혁수 씨(30)는 최근 평소 이용하던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찾기 목록에서 삭제했다. 연예인 사진에 달린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댓글과 외모에 대한 적나라한 품평 때문이다. 열 살 아역배우 사진에 달린 ‘성희롱 댓글’을 보고 나서부터는 아예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는다. 강 씨는 “아무리 가상공간이라고 하지만 도를 넘어선 언어 성희롱이 판친다”며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흥밋거리로 삼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성적 불쾌감을 주거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담은 게시글, 댓글을 쏟아내는 ‘키보드 성희롱’이 관용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는 12세 미만 아역배우 사진에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댓글도 무비판적으로 달리는 상황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는 연령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어린아이들도 아무 죄책감 없이 키보드 성희롱에 노출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콘텐츠범죄 중 사이버음란물은 2014년 3739건, 2015년 3475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 중 약 20%에 이른다. 최근 연예계는 도를 넘어선 키보드 성희롱에 적극 대응하는 추세다. 지난달 가수 아이유에 대해 키보드 성희롱을 일삼은 11명의 피의자에 대해 벌금형 처분이 확정됐다.

특히 인터넷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도 ‘직접 말하거나 만진 것도 아니니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키보드 성희롱’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문제도 크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온라인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는 식의 범죄를 성적 호기심에 자기 과시욕을 더한 ‘놀이’로 여기는 행위자들은 점차 희롱의 정도를 높여간다”며 “‘직접 성폭행한 것도 아니기에 성희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인식도 현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성희롱#성희롱 댓글#사이버음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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