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A형백신 물량 부족에 조기 수입 차질… 최소 한달 무방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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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구제역 백신 관리까지 엉망


정부가 구제역 백신의 확보 물량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방역정책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의미다. 잘못된 재고량 통계를 바탕으로 일제 접종 계획과 백신 수입 계획까지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폐기해야 할 백신까지 유통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껏 구제역 대응에 혈세 3조 원 이상을 투입한 정부가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재고 파악도 못한 백신 정책

13일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O형과 A형 구제역을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O+A형 구제역 백신 99만 마리분을 확보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제 접종 기간에 O+A형 백신이 어디에 얼마나 사용됐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A형 구제역이 발견된 경기 연천군 및 인접 시군 등 14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 18만5000마리분의 O+A형 백신이 사용됐다. 다른 지자체에선 O+A형을 접종한 농가가 없고 O형만 접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량 99만 마리분과 사용량 18만5000마리분을 합치면 애초에 O+A형 백신이 117만5000마리분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이는 9일 농식품부가 밝힌 재고물량(190만 마리분)보다 72만5000마리분이나 적은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연천 주변 말고도 O+A형 백신이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 얼마나 사용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백신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백신 수입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9일 일주일 안에 부족분을 긴급 수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흘 뒤인 12일에는 이달 말까지 160만 마리분을 수입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나마 영국 제조업체와 연락도 닿지 않아 계획대로 수입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백신이 버젓이 유통되는 등 백신 관리가 허술한 정황도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9일 전북 정읍시의 한 염소 농가에 지급된 구제역 백신은 유효기간이 지난해 9월까지였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병 입구에는 주삿바늘을 여러 차례 꽂았던 흔적이 있었고 이물질까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도 관계자는 “담당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내준 것 같다”며 “농민의 연락을 받고 정상 백신으로 교체해줬다”고 말했다.

○ “국도 25호선 방어에 총력”

정부의 백신 정책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농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A형 구제역에 무방비로 노출된 돼지농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돼지에게서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없어 돼지에게는 O형 백신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천에서처럼 A형이 추가로 발생하면 국내에서 사육 중인 돼지 1100만 마리는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정부는 A형 구제역이 돼지에게 전파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10∼2016년 발생한 A형 바이러스 87건 중 돼지에게서 발생한 것은 3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차관은 “구제역 세계표준연구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사용 중인 백신이 연천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 바이러스 차단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돼지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백신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일제 백신 접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앞으로 일주일을 사태의 분수령으로 보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8건 가운데 6건(의심신고 2건 포함)이 밀집한 충북 보은군의 3km 방역대를 사수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역 당국은 구제역 발생 농가들이 국도 25호선에 가까워 축산차량이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소를 도살 처분한 농가에 보상금 50%를 미리 지급하고 생계안정자금도 즉시 지원하기로 했다. 백신 일제 접종을 위한 백신 구입비용도 사육 규모에 상관없이 정부가 전액 농가에 지원할 계획이다.

박성민 min@donga.com·최혜령 기자
#구제역#백신#수입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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