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안돼서” “가게 얻을 돈 없어서”… 불황속 ‘가게 쪼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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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속 가게’ 서울 최소 1500곳… 대부분 건물주 동의없이 불법 임대
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지지부진


13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치킨집에 게시된 ‘숍인숍’ 입점 공고.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3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치킨집에 게시된 ‘숍인숍’ 입점 공고.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모 씨(29·여)는 지난달 서울의 한 카페 구석에 ‘숍인숍(가게 안의 가게)’ 형태로 액세서리 매장을 차렸다. 카페 한쪽 3.3m²(1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진열대 두 개가 매장의 전부지만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된 것이다. 13일 이 씨는 “보증금 없이 가게를 낼 수 있었다”며 “덕분에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며 안도했다.

제과점 차리기를 목표로 하는 조모 씨(40)도 숍인숍 매장을 찾고 있다. 조 씨는 번듯한 매장에 제과점을 여는 꿈을 꿨지만 턱없이 높은 임차료 때문에 창업의 꿈을 접으려 했다. 그러나 최근 숍인숍 매장이 틈새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다. 조 씨는 “직접 가게를 차리기에는 보증금에 인테리어 비용 같은 창업 초기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3개월째 숍인숍 가게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의 꿈이 이뤄지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숍인숍이 창업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게 전체를 빌릴 때 필요한 보증금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월세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어 창업 실패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숍인숍도 나름의 비용은 든다. 매장 주인이 요구하는 수수료가 있고, 권리금 형식의 입점비도 내야 한다. 이 씨가 입점한 카페 주인은 월 수수료로 매출이 아닌 영업이익의 38%를 요구했다. 이 씨는 “매장 수수료가 낮은 숍인숍은 입점비를 따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4, 5년 전에 비하면 수수료가 4배 가까이 올랐지만 보증금이나 월세와 비교하면 감당할 만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숍인숍 매장은 대부분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가 없는 ‘전전세’ 형태라는 것이다. 임대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전전세는 상가임대차보호법상 불법이다. 숍인숍을 원하는 사람들이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가게를 갖고 있는 자영업자로서는 불경기에 매장 안에 다른 매장을 들이면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숍인숍 매장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숍인숍 전문 컨설팅업체 스토어쉐어에 따르면 숍인숍 매장은 서울에서만 최소 15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숍인숍 전문 중개업체 마이샵온샵 최대헌 대표에 따르면 건물주의 동의를 받은 숍인숍 매장의 비율은 10% 수준이다. 건물주인 임대인이 숍인숍 운영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합법적인 숍인숍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2015년 카페와 서점 등을 함께 운영하는 형태의 숍인숍 매장 등에 대해 음식점과 다른 매장을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카페와 기타 업종의 숍인숍 형태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숍인숍 업주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
#청년창업#불황#임대차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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