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조용휘]안전 불감증이 빚은 인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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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1 갑자기 교통신호등이 꺼지면서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뒤엉켰다. 멈춰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를 데리고 탄 어머니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암흑천지로 변했고, 식당 수조의 물고기는 배를 뒤집은 채 떠올랐다. 재난영화에서나 볼 일이 9일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7만 명이 사는 신도시가 터진 변압기 하나 때문에 9시간 동안 마비됐다.

#2 달리던 지하철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객차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유리 파편이 넘어진 승객의 머리와 얼굴을 덮쳤다. 가슴을 쓸어내린 승객 150여 명은 선로를 따라 300m를 걸어 대피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2일 오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아찔한 사고가 부산지하철 1호선에서 발생했다. 어설프게 설치된 환풍기의 풍도(風道)관이 넘어지면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3 12일 오후 수영구 중학교 증축공사 현장에서 용접 불똥이 스티로폼에 옮겨붙어 불이 났다. 작업자 4명 가운데 미처 대피하지 못한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커먼 연기가 1시간가량 광안리해수욕장 상공으로 치솟으면서 언론사에는 “무슨 일이냐, 대피해야 하느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영화도시’ 부산에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사후 대책에 컨트롤타워는커녕 매뉴얼조차 제대로 없다는 점도 글로벌 도시 부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가 해운대 마린시티를 덮쳤을 때, 2010년 해운대 골든스위트 화재 때의 문제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정관신도시 고압변압기 폭발 정전 사고는 9일 오전 10시 24분 기장소방서에 신고됐다. 하지만 부산시의 사고대책본부는 3시간 16분이 지난 뒤 구성됐다. 재난 컨트롤타워인 부산시 재난상황실의 대응은 수준 이하였다. 사고가 난 지 5시간이 지났는데도 엘리베이터에서 구조된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국민안전처에 재난문자 발송을 오후 1시 10분에 요청했으면서 보고서에는 낮 12시 30분 요청해 오후 1시 12분 완료했다고 거짓으로 밝혔다. 국민안전처의 대응이 늦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국민안전처 이상권 상황실장은 “문자 발송 요청을 받은 뒤 2분 만에 승인을 완료했다”고 했다.

부산시 재난상황실은 12일 오후 3시 50분 발생한 수영구 중학교 증축 공사장 화재 사고는 20분이 지나도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소방안전본부로부터 1보를 보고받은 시간은 오후 4시 15분이었다. 같은 날 오후 3시 23분 발생한 부산지하철 환풍시설 충돌 사고도 부산교통공사 교통관제소로부터 15분이 지난 뒤에야 통보를 받았다. 일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발생한 사고였지만 부산재난상황실 근무자 3명은 허둥지둥했다.

재난에 관한 지휘, 감독도 부족했다. 상황 관리는 물론이고 유관 기관과의 유기적인 통합 대응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국민안전권’을 헌법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시대가 변했고 안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만큼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골든타임을 지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대응책을 개선하는 게 먼저다. 부산시의 재난 시스템은 좌충우돌(左衝右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안전 불감증#국민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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