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일하고 싶은 나라에서 근무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CEO Way]현대캐피탈 정태영 부회장의 ‘글로벌법인 통합 교류’ 실험



현대캐피탈 독일 법인에서 일하던 모리스 크랜스벨트 씨는 지난해 인사 담당자로부터 해외 파견 프로그램을 제안받았다. 원하는 국가의 법인에서 장기로 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어서 솔깃했다. 역량을 키울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그는 곧바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의 선택은 한국이었다. 크랜스벨트 씨는 지난해 8월부터 한국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독일에서 금융 모델, 비즈니스 분석을 담당해 온 크랜스벨트 씨는 현재 본사 해외사업본부의 해외전략실에서 시장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러 통로로 들어오는 시장 정보를 분석하고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는 “해외 법인 간 교류는 직원에게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며 회사는 각 법인과 직원들의 특성을 잘 활용할 수 있어 ‘윈윈’ 전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원하는 나라에서 일하게 해준다”

현대캐피탈은 직원이 원하는 국가에 장기 파견하는 ‘글로벌 로테이션 프로젝트(GRP)’를 올해 확대 시행한다고 13일 밝혔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처럼 각 나라의 법인 직원이 교류하고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인사관리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언어와 조직 문화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표준화돼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시행하는 인사 시스템이다.

현대캐피탈의 GRP는 한 법인에서 다른 해외 법인으로 최소 1년 이상 장기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내는 법인이 비용을 부담한다. 해외에서 쌓은 경험을 원래 근무지로 돌아와 활용하라는 취지다. 전략, 재무, 리스크, 인사, 정보기술(IT), 마케팅 등 GRP가 적용되는 업무 범위도 다양하다.

특히 서울 본사에서 해외 법인으로만 직원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해외 법인들 간에도 인력을 교류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미국 법인 직원이 캐나다와 독일로, 러시아 법인 직원이 미국과 영국에, 캐나다 법인 직원이 중국 등으로 파견됐다. 모두 9명이 원하는 국가 법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차경모 현대캐피탈 홍보팀 과장은 “러시아 직원은 미국에 가고 싶어 했는데, 비자 발급이 안 됐다”며 “회사 측에서 미국 대사관 영사를 두 번 찾아가 설득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 “맥킨지, GE처럼 바꾼다”, 정태영 부회장의 실험

GRP 프로그램은 정태영 현대캐피탈 부회장이 꺼낸 ‘글로벌 통합’ 카드다.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금융사가 되려면 시스템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캐피탈은 2010년 진출해 있는 9개국의 직급체계부터 통합했다. 평사원은 ‘APB’,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급은 ‘PB’, 중간관리자는 ‘LPB’ 등으로 통일했다. 정 부회장은 “직급 통일은 다른 나라에서 일할 수 있다는 암묵적 메시지다”라며 “직급 통일이 안 돼 내 상사인지 부하인지도 헷갈리면 함께 일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직급 통일 이후 현대캐피탈은 인력 교류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2010년 특정 법인의 프로젝트에 여러 국가 법인의 직원이 임시로 파견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지난해 32명이 이런 식으로 파견됐다. GRP는 이 프로그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다른 해외 법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개 채용 제도도 도입했다. 해외 법인 간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현재 국내(8000명)와 해외(1만 명)를 합해 총 1만8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정 부회장이 시도하는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의 글로벌 전략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지난해 현대카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지털캠프를 만들고 해외 연구·사업을 강화했다.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해 주재원이나 현지 채용 인력으로 구분하는 국내 금융사 해외 인력관리의 ‘이분법’을 깨기 위한 조치다. 이 과정에서 해외 근무를 원하는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맥킨지 등이 수년 전 이런 방식으로 직원을 운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법인의 인력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조직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 등을 표준화하고 이를 정착시키는 게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원들이 자유롭게 해외 근무를 지원하는 ‘커리어마켓’을 조성하면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경력을 개발하게 하거나 외국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정태영#현대캐피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