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고등학생에 책임 떠넘기는 ‘고등래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14일 06시 57분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아들 장모군. 사진출처|Mnet 방송화면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아들 장모군. 사진출처|Mnet 방송화면
장제원 아들 논란 속 스스로 하차
입다문 제작진 비겁한 행태 비난

“장군이 하차 의견을 전했고 이런 뜻을 받아들이겠다. 멀리서 지지하겠다.”

10일 케이블채널 엠넷 ‘고등래퍼’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아들 장모군이 과거 행적과 관련한 논란으로 13일 결국 하차했다. 제작진은 처음 논란이 불거진 후 입을 다물고 있다가 3일 만에 ‘공식입장’이라며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장군이 어린 시절 치기어린 행동에 대해 가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이번 일로 심려를 끼치게 된 많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며 장군의 자발적인 프로그램 하차 의견을 제작진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어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유체이탈 화법’에 지나지 않는다. 논란의 당사자 뒤에 숨어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처사로도 보인다. 그래서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냐는, 무책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본의 아니게” 벌어질 상황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엠넷의 일부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의 과거 행적 논란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참가자들의 ‘뒷조사’는 하지 않았다. 힙합에 대한 열정과 바른 인성을 가진 친구들이 참여했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아예 사전검증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또 논란이 벌어진 뒤 3일 동안 명확한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당사자의 하차 의사가 나오기까지 침묵으로 일관한 제작진의 태도는 선뜻 이해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사태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을 오히려 출연자에게 떠넘기려는 듯한, 비겁하고 부도덕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논란의 당사자가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점에서도 사태는 간단치 않다. ‘고등래퍼’는 고교생들의 랩 배틀을 내건 프로그램으로, 당연히 10대 시청자를 겨냥한다. 자칫 이번 논란은 10대 시청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무려 3일 동안 아무런 입장과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자라나는 청춘의 재능을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꾀하려는 얄팍한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면, ‘공인’인 유명 정치인의 아들과 관련한 논란에 제작진은 더욱 엄격했어야 한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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