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국인들 홀린 매운맛… 정작 저는 매운걸 못먹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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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 개발 주도 삼양식품家 며느리 김정수 사장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은 삼양식품가(家) 며느리이자 ‘불닭볶음면’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8일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 본사에서 김 사장이 불닭볶음면 캐릭터인 ‘호치’ 인형과 나란히 섰다. 삼양식품 제공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은 삼양식품가(家) 며느리이자 ‘불닭볶음면’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8일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 본사에서 김 사장이 불닭볶음면 캐릭터인 ‘호치’ 인형과 나란히 섰다. 삼양식품 제공
“불닭볶음면 도전! 스리, 투, 원, 고(Go)!”

외침과 함께 남녀노소 영국인들이 검은색 컵라면 용기에 든 빨간 면발을 포크로 먹기 시작한다. “맛있다(yummy)”는 감탄사도 잠시,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우유를 마시는 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런던 불닭볶음면 도전’ 유튜브 동영상은 글로벌 조회수 740만 회를 기록했다. ‘코리안 스파이시 누들’을 영어로 검색하면 조회수 수백만 건의 영상이 줄을 잇는다.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1963년 나온 삼양라면을 제치고 삼양식품의 새로운 전기를 열고 있다. 지난해 삼양식품 라면 수출액 950억 원 중 불닭볶음면이 70%(670억 원)를 차지했다. 올해는 불닭볶음면 하나로 1000억 원 수출을 앞두고 있다. 1961년 설립된 삼양식품에 불닭볶음면 같은 ‘해외 히트작’은 처음이다.

불닭볶음면 신화를 만들어낸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53·여)을 8일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 본사에서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스웨터 차림이었다. “아줌마죠, 뭐”라며 웃는 그는 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의 장남인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54) 부인이다.

삼양식품은 1989년 공업용 쇠기름 파동(나중에 모두 무죄 판결 받음)을 겪기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1위 라면회사였다. 그러나 투서로 시작된 쇠기름 파동 여파가 커 회사는 1998년 2월 부도를 맞았다. 김 사장이 시집오고 난 4년 뒤였다. 며느리까지 나서 일을 도왔다. 전공은 작곡과 사회복지였지만 섬세한 미각과 디자인, 마케팅 능력으로 구원투수가 됐다. “삼양라면 패키지 디자인을 제가 했다. ‘갓짬뽕’ ‘맛있는라면’ 등등 제품 이름도 직접 지었다”고 그는 말했다.

‘파이어 누들’을 만든 주인공이지만 김 사장은 매운 걸 못 먹는다. “친정 부모님이 이북 분들이었고, 명예회장님(시아버지)도 철원 북쪽 출신이어서 집안 음식이 맵지 않다. 삼양라면이 타사 제품에 비해 안 매운 이유”라고 말했다. “신라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도 명예회장님이 ‘매운 건 안 한다’고 하셨다. 맛있는라면 제품에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었다가 혼나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2011년 고등학생이던 딸이 졸라서 명동 데이트에 나섰다. “사람 많은 데서 먹자”는 딸의 말에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던 매운 찜닭집에 들어갔다. 모녀는 두 입을 먹고 포기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젊은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스트레스 풀린다”는 말들이 들려 왔다. ‘이걸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가서 고추장, 페퍼소스, 멕시칸 핫소스 등 온갖 매운 소스를 브랜드별로 샀다. 종류별로 섞어서 맛을 보고 연구센터에도 보내 분말화, 액상화 실험을 했다. 1년간의 개발 기간 매운 소스 2t, 닭 1200마리가 투입된 끝에 불닭볶음면이 나왔다.

불닭볶음면은 설립 56년을 맞은 삼양식품의 해외 시장 성공 가능성도 높여주고 있다. 유럽과 미주 지역은 물론이고 미고랭 같은 볶음면에 익숙한 동남아 지역에서도 인터넷을 타고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김 사장은 “이렇게까지 성공할지 몰랐다. 하늘이 ‘그래, 너희 노력했으니까 이것 받아라’며 준 선물 같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2011년 ‘나가사끼 짬뽕’의 성공이 일장춘몽으로 끝났던 기억에 처음엔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인도네시아 출장을 갔는데 마트마다 불닭볶음면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이게 시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기업보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는 넓고 갈 곳은 많으니까 전성기 시절의 삼양을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불닭볶음면#삼양라면#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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