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0시간 공익활동’ 미이행 변호사 1616명, 징계 받을 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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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상황 악화… 전년보다 20배↑ 참여자도 눈가림식 활동 많아
“강제 규정 가혹” 폐지 목소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 가운데 10명 중 1명꼴인 1616명이 2015년 변호사법에 규정된 공익활동(프로 보노) 의무 시간을 채우지 못해 과징금을 물거나 징계를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이는 직전 연도인 2014년의 69명에 비해 20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공익활동까지 강제하는 건 가혹하다”며 아예 법을 바꿔 공익활동 의무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변호사 시장 악화에 공익활동 관심 시들

한국 변호사의 공익활동은 2000년 7월 변호사법 개정으로 의무화됐다. 미국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던 프로 보노를 도입한 것이다. 프로 보노는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 보노 푸블리코(Pro Bono Publico)’에서 나온 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연간 20시간 이상의 공익 활동을 한 뒤 활동 내용을 다음 해 1월 31일까지 해당 지방변호사회 회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대한변협의 징계나 3년 이하의 정직,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등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공익활동 의무화 당시 “정부가 변호사단체를 법정단체가 아닌 임의단체로 만드는 것을 막자”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규제개혁을 내세워 변호사단체를 임의단체로 만들려고 하자 변호사 업계의 자율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변호사단체가 법정단체여야 변호사들의 가입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변호사 업계가 자신들이 도입한 공익활동에 무관심해진 것은 변호사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뀐 탓이다. A 변호사는 “공익활동 의무 도입 당시만 해도, 변호사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특수한 지위였지만 이제는 ‘자격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익활동이 의무화됐던 2000년 전국의 개업 변호사 숫자는 4000명 선이었지만 현재는 2만 명이 훌쩍 넘는다. 연간 20시간의 공익활동조차 버거울 정도로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 “변호사법 개정해 공익활동 의무 없애야”

변호사단체들도 이런 사정 때문에 공익활동 의무를 못 채운 회원들을 징계하는 데 소극적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공익활동 의무시간을 채우지 못한 회원들에게 시간당 3만 원씩의 과징금을 물린 뒤 이를 안 낼 경우에만 징계에 넘기고 있다. 또 자체 설문조사나 법관 평가 참여, 각종 연수 프로그램 참여 등도 프로 보노로 인정하는 ‘꼼수’를 쓰며 징계대상자 수를 줄이려 애쓰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 B 씨는 “변호사 실무 사이버 강의로 시간을 채웠다”며 “사이버 강의는 5분마다 화면을 클릭해야 하는데 사무실 직원이 대신 해줬다”고 털어놨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공익활동을 하지 않아 징계에 회부된 변호사 숫자가 급증한 데에는, 변호사단체가 회원들 눈치를 보는 분위기 탓도 크다”고 보고 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공익활동 의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할 공익활동을 법으로 강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과징금까지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한 임원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회에 변호사법 개정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민 kimmin@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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