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냉장상태 접종” “20도때” “8도 이상” 백신매뉴얼 뒤죽박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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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구제역 예방 총체적 부실

“백신을 냉장 보관하다 꺼낸 뒤 되도록 빨리 사용하세요.”(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의 ‘소 농장 구제역 방역 표준행동요령’)

“그렇게 했다간 큰일 납니다. 접종 하나 마나예요.”(농식품부 관계자)

‘정부의 말을 듣고 제대로 접종했는데도 구제역에 걸렸다’던 농장주들의 하소연이 사실로 확인됐다. 정부가 배포한 백신 접종 매뉴얼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존에 시행된 접종 결과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가 구제역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린 뒤에도 구제역 발생이 연일 계속되면서 정부의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 매뉴얼마다 내용 제각각

12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농식품부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소 농장 구제역 방역 표준행동요령’ 최신판에는 “냉장 상태(2∼8도)에서 보관 중인 백신을 접종을 위해 꺼낸 후에는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사용하라”로 표시돼 있다. 냉장 보관된 백신이 신선할 때 신속하게 접종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냉장 상태의 백신을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접종하면 효력이 없다고 강조해 왔다. 전북 정읍시 농가에서 구제역이 확진된 7일 농식품부와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냉장고에서 꺼낸 백신은 실온에 30∼60분가량 두고 백신 온도가 18도가량 되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스스로 잘못된 지침을 내린 것을 인정한 것이다.

지역별로 배포된 매뉴얼도 제각각이다. 강원 횡성축협이 배포한 자료에는 “사용 시 상온에 2, 3시간 놔둔 뒤 백신이 20도 이상 되면 실시”하라고 돼 있지만 전남 보성축협 자료는 “8도 이상 실온에서 잘 흔들어 사용”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농가의 대부분이 축협을 통해 접종 방법을 교육받는 것을 감안하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농가에 전달되고 있는 셈이다.

2회 접종해야 효과를 내는 구제역 백신을 정부가 1회만 접종하도록 고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제출받은 ‘구제역 백신 허가부표’에는 최초 접종하는 새끼돼지 8주령에 1차, 1주 후에 2차 접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구제역 예방접종·임상검사 및 확인서 휴대에 관한 고시’는 8∼12주령에 한 차례만 백신 접종을 하도록 정했다.

○ 수의사도 접종 어려운데 농가에 떠넘겨

사육 규모가 50마리 이상인 농가는 농장주가 직접 백신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지침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험이 없으면 주사를 제대로 놓기 어려운데 정부가 농장주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농가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전북 정읍시에서 한우 농가를 운영하는 강모 씨(60)는 “주사를 놓다가 수백 kg이나 되는 소가 발버둥쳐 앞니가 부러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시행 중인 백신 일제 접종도 졸속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연천군은 충북 보은군과 전북 정읍시에서 구제역이 발병하자 8일 저녁 O형 백신을 긴급 공급했다. 그러다 A형 구제역이 발생하자 9일 오후 부랴부랴 O형과 A형을 모두 예방하는 ‘O+A형’ 백신을 다시 공급했다. 하루 사이 백신 주사를 두 번 놓은 농장주 정모 씨(55)는 “백신을 두 번이나 맞은 소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 우유 생산량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항체 형성률이 높았음에도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들도 나오고 있어 ‘물백신’ 논란도 일고 있다. A형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연천군 젖소농가는 A형 구제역 바이러스 항체 형성률이 90%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다섯 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보은군 한우농장도 항체 형성률이 87.5%로 나왔다. 김철중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가 쓰는 백신은 유럽에서 수입한 것으로 국내서 발병한 구제역에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 / 연천=황성호 / 김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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