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매출 반토막 났는데 구제역까지 덮쳐 뒤숭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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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치닫는 구제역]서울 마장축산물시장 가보니

10일 오후 구제역 파동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이 한산하다. 한 상인은 “구제역이 터진 이번 주 들어 시장을 찾는 사람이 20∼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0일 오후 구제역 파동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이 한산하다. 한 상인은 “구제역이 터진 이번 주 들어 시장을 찾는 사람이 20∼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진 10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마장축산물시장. 마장풍물회 회원 10여 명이 시장 골목을 누비며 징과 꽹과리를 두드려댔다. 풍물회 단장 이교국 씨(70)는 “정월대보름(11일)을 앞두고 구제역으로 침체된 시장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고 상인들은 시큰둥했다. 한 상인은 “당장 물건 수급도 안 돼서 싱숭생숭한데…”라며 등을 돌렸다.

구제역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고 살아 있는 가축의 이동이 금지되자 서울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의 50% 이상이 거쳐 가는 육류 전문 유통시장인 마장축산물시장의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쌀쌀했다.

상인들은 “설 연휴 뒤 일주일 만에 구제역이 창궐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청탁금지법의 여파로 지난해 추석에 비해 설 매출이 40∼50% 줄어든 마당에 구제역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타격이 더 커졌다는 것. 실제로 몇몇 상점 앞에는 설 연휴에 팔아치우지 못한 선물세트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9일 한우의 경매 낙찰가는 구제역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29일보다 7∼24% 뛰었다. 구제역으로 쇠고기 공급량이 줄어들자 시장에선 매출이 더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충북 음성군에서 물량을 공급받는 상인 정삼주 씨(47)는 “들어오는 물량이 평소의 40%로 곤두박질쳤다”며 “도매가도 올라 소 한 마리를 팔 때마다 50만∼60만 원씩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물량까지 부족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다음 주가 이번 사태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재홍 마장축산물시장 상점가 진흥 사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번 주말 구제역이 확산된다면 2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부터 홍콩으로 한우를 수출해온 태우그린푸드는 이날 오후 마장동 본사 사무실에서 조규근 대표 주재하에 대책회의를 열었다. 조 대표는 “며칠 전 홍콩에서 수입 금지 조치는 없다는 공문을 보내와 한숨을 돌렸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판단에 회의를 열었다”며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 홍콩에서 ‘한국소는 다 병들었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소규모 식당 운영자들이나 일부 시민은 “가격이 뛰기 전에 고기를 사둬야 한다”며 급히 시장을 찾기도 했다.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 주기적으로 한우를 사서 보낸다는 김모 씨(56·여)는 양손 가득 고기가 든 봉지를 들고 “가족의 건강이나 가격 인상을 생각하면 오늘 미리 사는 게 맞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정릉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호덕 씨(83)는 식당 직원을 동원해 고기를 사 날랐다. 유 씨는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가늠이 안 돼 오늘 새벽같이 주문한 돼지고기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고기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 2개와 어른 몸통만 한 아이스박스를 직원과 나눠 든 그는 힘에 겨운 듯 택시를 타고 시장을 떠났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구제역#축산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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