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신장섭]공직자의 직권남용, 어떻게 볼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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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수사하는 특검이 관련 공무원들을 구속 기소하는 데 적용한 혐의가 직권남용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호로 구속됐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다.

특검은 장관이라 하더라도 산하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직권남용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합병 찬성 여부는 한국 최대 그룹의 미래와 국민연금이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연결되어 있는 정책적 판단이었다. 어떤 판단이든 장관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틀렸다 하더라도 그 판단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한다. 기업에도 ‘사업 판단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경영자들이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증거가 없는 한, 잘못한 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이다.

장관이 산하기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그것이 과연 남용인지 의문이다. 장관이 정책판단을 했다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산하기관 운용의 법적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장관에게 죄를 물을 근거는 부족하다고 본다.

특검은 지금 똑같은 선입견을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다시 적용하려는 것 같다. 공정위를 압수수색한 뒤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뒤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를 줄이기 위해 삼성SDI가 보유하던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야 했는데 그 규모를 깎아줬다는 혐의다.

그러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몇 주를 매각해야 하는가는 공정위의 정책적 판단이다. 공정위가 새로 만든 가이드라인에 대해 삼성 측에서 문의했고, 협의 과정에서 주식매각 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부기관과 기업의 협의 자체가 불법이라면, 또 그에 따라 정책판단이 수정된 것이 불법이라면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해당 기업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어디든 있다. 그것이 소통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 교수는 ‘조직의 한계’라는 책에서 “책임기제는 잘못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권위의 진정한 가치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며 “A의 모든 결정이 B에 의해 모두 감찰되면 권위가 A에서 B로 이동하고 따라서 본래 문제의 해법은 찾아지지 않는다”고 갈파한다. 특검이 마치 전권을 ‘이동’받은 기관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권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공직자들을 ‘부역자’로 매도하는 일이 반복되면 ‘변양호 만성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면 공직(公職)은 공직(空職)이 될 수밖에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공직자#직권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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