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에 280억 사기친 농아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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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사기단 ‘행복팀’ 8명 구속

“엄정한 수사를” 9일 경남 창원시 창원중부경찰서 앞에서 대규모 사기사건으로 피해를 본 농아인들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엄정한 수사를” 9일 경남 창원시 창원중부경찰서 앞에서 대규모 사기사건으로 피해를 본 농아인들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원금이랑 이자 갚으려면 아파트 팔아야 하는데…. 피눈물이 납니다.”

9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중부경찰서 정문 앞. 서울에서 왔다는 박형길(가명·54) 씨가 애타게 하소연했다. 그러나 박 씨의 절규는 귀로 들을 수 없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인인 박 씨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처지를 수화(手話)로 말했다.

박 씨는 구두를 만들며 부인 최모 씨(49)와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2014년 6월 농아인학교 동창인 한모 씨(50)가 그에게 연락했다. “3개월만 지나면 투자금의 2배 수익이 보장된다.” 노후에 먹고살 걱정이 컸던 박 씨는 솔깃했다. 그는 한 씨에게 2억5000만 원을 건넸다.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돈이었다.

은행 이자만 매달 120만 원. 하지만 “사업이 잘되고 있다”는 한 씨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한 푼의 이익금도 회수되지 않았다. 불안해진 박 씨는 2015년 6월 한 씨에게 “원금이라도 달라”고 하소연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한 씨는 지난해 가을 달랑 500만 원만 내놓고 끝이었다. 얼마 뒤 박 씨 부부는 한 씨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기를 당한 걸 알아챘다. 박 씨는 “같은 처지의 사람을 등쳐 놓고 지금도 ‘감옥 갔다 와서 주겠다’고 둘러댄다”고 하소연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범죄단체 조직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농아인 김모 씨(44·무직) 등 8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또 같은 혐의로 농아인협회 모 지부장 등 2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국에 걸쳐 농아인 500여 명에게서 28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농아인이 농아인을 상대로 저지른 대규모 사기 사건이다.

사기 조직의 이름은 ‘행복팀’. 이들은 동창 등 지인을 접근시키는 방식으로 농아인들에게 “아파트와 공장을 짓는 데 투자하면 고수익과 함께 취업과 복지관 이용 등 많은 혜택을 준다”고 속였다. 지부장과 팀장 등 점조직으로 활동하며 농아인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7억 원까지 받았다. 일당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위해 장애인단체 활동이나 신앙생활을 못 하게 차단했다. 또 유니폼을 입히고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세뇌 교육도 했다. 김 씨 등은 가로챈 돈으로 명품 옷이나 포르셰 아우디 벤츠 등 고가의 외제 차를 수시로 구입했다. 또 고급 전원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는 등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서울과 충북의 행복팀 중간책임자가 갖고 있던 현금 7억 원을 압수했다. 또 범죄에 이용하거나 김 씨가 타고 다니던 외제 차는 몰수보전을 신청할 예정이다. 김대규 창원중부경찰서 수사과장은 “김 씨는 ‘목욕탕에서 때밀이 등을 하며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생활했다’는 등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가 마무리되면 피해 금액이 최대 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농아인#사기#투자사기단#행복팀#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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