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지역 언론 우군 삼아 ‘주류언론 따돌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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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언론과의 전쟁’


“스파이서 장관님(Secretary Spicer), 드문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일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지역 방송사 기자가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질문을 하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게 이렇게 말하자 일부 출입 기자는 실소를 터뜨렸다. 내각 소속이 아닌 대변인에 대한 ‘장관’ 존칭에는 지방 매체에까지 질문 기회를 준 대변인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감사가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카이프를 통해 등장한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보수 성향 라디오 진행자는 해군 출신 스파이서를 ‘중령님(Commander)’이라고 부르며 “미국을 위해 봉사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트럼프 백악관’은 1일 대형 TV를 기자실에 들이고 주 2회씩 사전 신청을 한 지역 언론에 한해 스카이프를 통해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스파이서는 “(백악관 기자실을) 가상으로라도 확장해 워싱턴이 묻지 않을 질문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NN은 “트럼프가 지지 세력에게서 쉬운 질문을 받기 위해 실시한 조치라는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주류 언론들과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가 인터넷 영상 통화로 백악관 기자실에 자기편을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카이프 출입기자’ 가운데는 친(親)트럼프 질문자가 많았다. 켄터키 주 지역지 발행인 제프 조브는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자임을 밝혔고, 앨라배마 주 라디오 진행자 데일 잭슨은 “엘리트 언론 거품 밖에서 질문을 받아줘 고맙다”고 말해 친트럼프 성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캘럼 보처스는 “의미 있는 질문도 있었지만 (통화를) 금방 끊어 후속 질문이 어려웠다”며 “백악관은 지역 언론이 브리핑을 풍성하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백악관 브리핑 때 첫 질문을 보장받았던 AP는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우대’에 특권을 잃었다. 스파이서는 지난달 23일 가진 첫 브리핑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를 비판한 책인 ‘클린턴 기업(Clinton Inc.)’ 저자인 뉴욕포스트 기자에게 첫 질문 기회를 줬다. 이후 보수 성향 워싱턴타임스, 폭스뉴스 등이 상징적인 첫 질문 기회를 차지했다. 전국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보수 성향을 내세운 인터넷 매체 라이프제트, 타운홀매거진도 첫 질문 기회를 잡았다. AP는 물론이고 주요 전국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사는 모두 배제됐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주류 언론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주에만 “망하고 있는 NYT”라는 공격을 두 차례 받았고 CNN, ABC, NBC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조사’를 발표한 ‘가짜 뉴스’란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는 NYT가 자신에게 덜 공격적이었던 대선 출마 전까지만 해도 NYT를 칭찬하는 트위터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13년 1월 NYT가 자신이 진행한 TV쇼 ‘어프렌티스’를 호평하자 “NYT가 보도를 잘해줬다”고 적었다. 이듬해 자신의 호텔 관련 기사를 게재했을 땐 ‘NYT의 굉장한 기사’라며 링크를 공유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업가적 기질은 언론을 다루는 데도 변함이 없는 셈이다.

트럼프와 주류 언론의 싸움이 과열되자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7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진정했으면 좋겠다”며 “CNN은 (가짜 뉴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콘웨이는 “20개 이상의 행정명령을 서명했는데 (언론이 반이민 행정명령) 하나에만 집중한다”면서 “좀 더 포괄적인 보도를 하면 어떤가”라고 말해 언론 비판의 수위를 낮췄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트럼프#주유언론#스파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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