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보수의 자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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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차별화 원했지만 새누리당과 도토리 키 재기
경망한 진보 따라한 바른정당 보수의 개혁 아닌 자폭 초래
과도한 자책·남탓 않는 보수가 진정한 혁신 이끌 수 있어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인명진 목사는 나이브하다. 친박(親朴) 핵심 몇 명만 후퇴시키면 새누리당이 깨끗해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깨끗하게 보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 목사만 나이브한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진짜 보수’로 차별화하고 싶어 안달이 난 바른정당도 그렇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김기춘과 우병우를 잡아넣고 새누리당과 결별하면 새 보수의 기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착각이다. 보수는 그런 과정에서 결정적인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

최근 안희정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대(大)연정’론을 들고나오자 바로 문재인은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은 청산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안희정이나 문재인의 인식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한쪽은 그럼에도 두 당을 다 협상 대상으로, 다른 한쪽은 그렇기 때문에 두 당을 다 청산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새누리당과 다르다는 자기 인식은 바른정당의 착각일 뿐이다.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을 향해 ‘너희는 청산 대상이야’라고 할 때 뒤에서 문재인은 바른정당을 향해 ‘너희는 뭐가 다른데’라고 묻고 있다. 못난이 형제의 한쪽이 다른 한쪽을 향해 ‘너 참 못났다’라고 하는데 제3자가 보면 둘 다 못난이다. 자기 집안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남의 집안에게 존중받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어리석다.

문재인은 이미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뒤에 “국민이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을 탄핵했다”며 ‘대(大)청소’론을 들고나왔다. 인명진이나 바른정당은 자신도 모르게 그 프레임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탄핵은 그 제도의 본질에 있어서 비리에 연루된 대통령 개인을 중심으로 한 탄핵이지 정권에 대한 탄핵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정책 추진은 권위적이었다. 정치적 포용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권위적인 정책이나 포용력 없는 정치를 도운 사람을 청산 대상, 심지어 부역자라고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들이 다 최순실의 남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박근혜와 최순실의 비밀스러운 관계의 피해자인 측면이 있다.

가학증(加虐症)과 피학증(被虐症)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바른정당의 자기편을 향한 과도한 가학은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피학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런 가학-피학증은 콤플렉스에서 온다. 군사정권 시절 집권당 의원이나 사학재벌이나 기업가나 언론사주로 잘나가던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버지 덕분에 정치의 길에 성공적으로 들어섰으나 아버지 편이 받는 비난은 받기 싫고 반대편으로부터도 평가받고 싶다는 분에 넘치는 욕심이 자신에게는 피학으로, 자기편에게는 가학으로 표출된다. 차라리 제3지대로 가라. 솔직히 제3지대를 표방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매력적인 면이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과오는 단호히 바로잡아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대통령 측근에 대한 구속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다만 그 이유가 타당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도 없고,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처럼 취업을 제한하는 것도 아닌, 지원금을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로 김기춘 등 고위관료 5명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구속한 것은 지나치다.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면 처벌할 법률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잘못된 지원금 배제는 행정적으로 취소할 사안이지 인신을 구속할 사안은 아니니까 직접적으로 처벌할 법률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금 법을 만드느니 어쩌니 한다. 처벌할 법률이 없으니까 기업의 배임죄처럼 공무원에게 걸면 걸리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한 것이다.

바른정당은 보수 개혁을 한다고 여겼는지 몰라도 그들이 실제 한 것은 보수의 자폭이었다. 반기문 낙마 이후 유의미한 지지율을 가진 보수 대선 주자는 나타나지 않고 결국 야야(野野) 대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나마 문재인 안희정을 바짝 쫓고 있는 보수 후보는 새누리당 쪽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사실이 아이로니컬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른정당#보수 개혁#문재인#대청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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