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열리는 대보름 장승제, 나쁜 국운 날렸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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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립민속박물관 ‘공주 쌍대리 장승제’ 준비 장장식 연구관

“정월대보름에 마을 공동체 전체가 치르는 전통 의례인 장승제를 도시민들에게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서 충남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의 전통 장승제 행사를 준비하는 장장식 학예연구관이 박물관에 전시된 장승 앞에서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정월대보름에 마을 공동체 전체가 치르는 전통 의례인 장승제를 도시민들에게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서 충남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의 전통 장승제 행사를 준비하는 장장식 학예연구관이 박물관에 전시된 장승 앞에서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각박한 요즘 세상에 장승제가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은 주변에 민가도 묘지도 없는 깨끗한 곳에 있는 나무를 찾아 제사를 올린 뒤 그 나무를 벤다. 그 사이 여자들은 각 집의 가신(家神)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 다음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모여 장승을 세운다. 그 옆에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긴 막대인 ‘솟대’를 세운 뒤 그 끝에 새 조각을 앉힌다.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새’다. 정성껏 세운 장승에 제사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고 한 해를 시작하는 모임을 갖는 마을 공동체의 축제가 시작된다.

충남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장승제’는 이렇게 치러진다. 올해는 9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서 이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처럼 각 지역의 고유한 장승제를 서울에서 소개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정월대보름에 치르는 민속행사, 의례는 한국 전체 민속의례의 65%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승제는 주민들이 참여해 장승을 직접 만들어 세우고 보존하는 만큼 민속학적 가치가 높다.

이 행사를 준비한 장장식 학예연구관(58)은 “설이 각 가정의 첫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첫 명절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직접 마을을 찾아가 지역 어르신들을 설득해 제주(祭主)인 주민들을 서울까지 모셔 왔다. 행사 준비가 한창인 6일 민속박물관에서 만난 장 연구관은 “쌍대리 장승제는 장승제 전통을 지켜오는 마을 중에서도 전통 의식이 매우 잘 보존된 곳”이라고 말했다.

장승제는 마을에 깃든 액운을 쫓아내고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다. 장 연구관은 “쌍대리 주민들이 ‘요즘 같은 때 나라의 안정을 비는 건 좋은 일’이라며 서울에서 제사 의식을 재현하는 행사를 하는 데 흔쾌히 협조했다”고 말했다.

쌍대리의 장승은 일반적인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 이름도 다르고 생김새도 조금 독특하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대신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이름을 쓴다. 대부분의 장승이 귀신을 쫓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무서운 표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면 쌍대리의 장승은 선비를 닮은 단정한 외모에 가깝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민속학에 빠진 것은 민요 조사를 위해 찾았던 한 마을 입구에서 장승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마을마다 각각 다른 장승이 서 있는 다양함에 매료돼 1982년 본격적으로 민속학 연구를 시작했다.

“장승은 예술가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만듭니다. 한 마을의 고유한 전통이 온전히 그 표정에 나타나는 거죠. 전문 예술인이 장승을 만들었다면 이런 다양성은 보기 힘들었을 겁니다.”

장승제를 연구하면서 곳곳에서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쌍대리만 해도 그렇다. 2003년 이곳을 찾아 장승제 견학을 부탁했을 때 주민들은 장 연구관과 일행들을 마을에 들이려 하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기 전 금줄을 치고 잡귀와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전통 때문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을 겨우겨우 설득해 간신히 허락은 받았지만 ‘집에 나쁜 일이 있는 사람은 다 나가라’는 얘기를 듣고 연구팀 인원을 몇 번씩 바꿔야 했어요. 마을의 1년 평안을 비는 제사다 보니 액이 끼면 안 되니까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단지 입구 등 도심에서도 장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도시에 장승이 거의 없다. 공간도 마땅찮고 장승을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 연구관은 이런 분위기가 아쉽다.

“장승과 장승제가 상징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입니다. 옆집 사람 얼굴도 잘 모르는 요즘 같은 때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장승 아닐까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국립민속박물관#공주 쌍대리 장승제#장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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