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기구에 막힌 연기 흡입구… 소화전 앞은 유모차 보관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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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점검]화재 취약한 키즈카페… 쇼핑몰내 6개 키즈카페 가보니

잠겨있는 탈출구 5일 서울의 한 대형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 후문. 직원은 대피 통로라고 알려줬지만 확인해 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을 거쳐야 건물 비상구로 갈 수 있다.
잠겨있는 탈출구 5일 서울의 한 대형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 후문. 직원은 대피 통로라고 알려줬지만 확인해 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을 거쳐야 건물 비상구로 갈 수 있다.

“천장에 있는 제연기가 절반이나 가려졌네요.”

6일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쇼핑몰의 키즈카페를 둘러보던 양성훈 소방기술사(40·한빛안전기술단 부장)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연기는 불이 났을 때 연기와 유독가스를 빨아들여 외부로 배출하는 장치다. 화재 때 부상 및 사망의 원인이 대부분 유독가스인 점을 감안하면 인명 피해 예방의 가장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이날 확인한 키즈카페의 제연기는 커다란 미끄럼틀 놀이시설에 가려져 구멍이 막혀 있었다. 양 기술사는 “복합 쇼핑몰은 먼저 건물이 지어진 후에 개별 매장마다 인테리어를 한다”라며 “새로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기존 화재안전시설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경우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초기 진화에 중요한 소화기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소화기를 계단 아래쪽 구석이나 식탁 아래로 밀어 둔 것이다. 양 기술사는 “기준에 맞춰 소화기를 비치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 두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 “대형 키즈카페도 걱정” 엄마들 불안감 확산

한 키즈카페 소화전 앞에 유모차와 짐수레 등이 있다. 소화전 같은 방화시설 주변에 물건이 있으면 화재 등 비상시 초기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한 키즈카페 소화전 앞에 유모차와 짐수레 등이 있다. 소화전 같은 방화시설 주변에 물건이 있으면 화재 등 비상시 초기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들어 대형 쇼핑몰은 영화관을 비롯해 식당 병원 상가 등 다양한 매장으로 구성됐다. 키즈카페로 불리는 어린이 놀이시설도 빠지지 않는다. 주택가 소규모 키즈카페에 비해 크고 놀이시설도 많아 이용객이 늘고 있다.

4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메타폴리스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난 곳도 키즈카페였다.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짧은 시간에 인명 피해가 크게 났다. 키즈카페에 가연성 소재가 특히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형 키즈카페도 비슷하다.

본보 취재진이 5, 6일 서울의 대형 쇼핑몰에 있는 키즈카페 6곳을 둘러봤다. 비상시 피해를 키울 수 있는 위험 요인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송파구의 한 키즈카페는 비상구 3개 중 1개의 문이 잠겨 있었다. 화재가 났을 때 계단을 통해 신속하게 이동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당 키즈카페 관리자는 “원래 열어 놓는데 손님들이 비상구로 드나들면서 문을 잠그는 경우가 있다”라고 해명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인테리어에 활용하다 보니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등 불이 잘 붙는 가연성 소재가 다른 매장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키즈카페에는 화기를 사용하는 주방이 함께 있었다. 영등포구의 또 다른 키즈카페는 소화전 앞 공간을 유모차나 짐수레를 보관하는 곳으로 쓰고 있었다.

키즈카페를 찾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천국’이라 여겼던 키즈카페가 자칫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5일 송파구의 한 키즈카페에서 만난 학부모 배모 씨(29)는 “평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시설이 있는지가 유일한 선택 기준이었다”라며 “이제는 소화기 같은 소방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큰 건물 안에 입점한 키즈카페라 안전할 거라고 믿었는데 화재 시 비상구가 열리지 않을 걸 생각하니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 대피 안내와 직원 교육도 부실

바로 옆에 화기있는 음식 키즈카페 내부 식당의 주방에서 조리를 하다 불이 나면 놀이기구 등에 옮아붙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바로 옆에 화기있는 음식 키즈카페 내부 식당의 주방에서 조리를 하다 불이 나면 놀이기구 등에 옮아붙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키즈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는 소방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정식 직원보다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것이 문제였다. 취재진이 찾은 키즈카페 6곳 중 4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소방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송파구의 한 키즈카페 아르바이트생은 “탁 트인 공간이라 불이 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용객에게 화재 대피 요령을 미리 고지하는 곳은 아예 없었다. 은평구의 한 키즈카페에서 만난 한 부모는 “한 달에 3, 4회 이용하는데 직원들이 대피 요령 같은 걸 알려준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송파구의 키즈카페에서 만난 김모 씨(37)는 “혹시 몰라 소화기와 비상구 위치를 확인해 봤는데 놀이기구에 가려 제대로 찾기가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일부 키즈카페는 비용 등의 문제로 소방 안전교육을 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보인다. 한 키즈카페 관계자는 “보통 몇 개월 일하지도 않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일이 소방 교육을 하기에는 비용이 부담된다”라고 말했다.


빠르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전국적으로 키즈카페가 늘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특히 대형 쇼핑몰 내에 입점한 키즈카페 중에 소방시설법과 다중이용업소 관련 특별법 모두를 충족하는 소방안전시설을 갖춘 곳은 드물다.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쇼핑몰 내 키즈카페의 경우 쇼핑몰의 소방안전 시설만을 믿고 소방안전설비를 스스로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대중이 운집하는 장소인 만큼 자체 시스템을 갖추도록 감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고야 best@donga.com·이호재 기자
#키즈카페#화재#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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