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줄줄 새는 백악관… 트럼프 “범인 색출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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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만에 행정명령 초안서
정상 통화 내용까지 잇단 유출… 워싱턴 관가 “정권초에 유례없어”
“反트럼프 공무원들의 저항” 분석… 일각선 “백악관의 여론 떠보기”

“유출자를 색출하라.”

1일 워싱턴포스트(WP)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맬컴 턴불 호주 총리의 전화 통화 내용을 보도하자 백악관이 발칵 뒤집혔다. 난민 문제로 언쟁하던 중 트럼프가 “(난민 상호교환 협정은) 최악의 협정이다”, “그들(난민) 중 한 명이 보스턴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는 막말을 쏟아낸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최측근 인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권부의 내밀한 이야기가 새나간 것에 백악관은 당혹스러워했다. 트럼프는 당장 트위터에 “이건 가짜 뉴스”라고 펄쩍 뛰며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게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선거캠프 자문역을 맡았던 마이클 카푸토는 “유출자를 찾는다고? 그건 방구석에 바퀴벌레가 몇 마리 있는지 일일이 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냉소했다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2일 전했다.

출범한 지 보름밖에 안 된 트럼프 행정부에서 내부 극비 정보가 구멍 뚫린 풍선에서처럼 술술 새 나가고 있다. 버지니아대 밀러센터의 러셀 라일리 교수는 2일 인터넷 매체 TPM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정부나 ‘리크(leak·정보 유출)’가 골칫거리였지만 출범 초기부터 야단법석을 떠는 상황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언론들은 요즘 특종 풍년이다. MSNBC는 2일 “트럼프가 군이나 정보기관이 아닌 사위 재러드 쿠슈너, 스티브 배넌 백악관 전략가와의 저녁 식사 자리(지난달 25일)에서 예멘 반(反)테러 작전 지시 결정을 내렸다”고 폭로했다. 최측근과의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한 이야기가 언론에 새 나간 것이다. 지난달 29일 수행된 작전에서 미군 1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태만한 자세에서 원인을 찾은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트럼프가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할 적임자를 찾기 위해 ‘리얼리티 쇼’ 형식의 경쟁 프로그램을 준비했었다(뉴욕타임스 1일)거나 성(性) 소수자 보호 조치를 박탈하는 ‘반LGBTQ행정명령’에 서명할 뻔했으나 맏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가 막았다(뉴욕타임스 4일)는 보도 역시 최측근 인사가 발설한 대표적 리크 사고 사례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 초기에는 비밀 유지가 잘되는 편이다. 갓 취임한 대통령이 ‘군기’를 꽉 잡아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쥐고 있는 고위 당국자들이 백악관이나 국무부 등의 출입기자들과 친분을 쌓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최근 유출 홍수는 관가 내 반트럼프 정서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책에 반감을 가진 공무원 등이 문서 수발 과정에서 정보를 유출해 소극적으로 저항한다는 설명이다. WP는 “1일 네이션지에 반LGBTQ 행정명령이 처음 공개된 것은 정책 입안을 걱정한 공직자가 초안을 통째로 언론사에 넘긴 것”이라고 5일 추정했다.

일부 사례는 트럼프의 의도적인 ‘여론 떠보기’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극비 문건을 외부에 흘렸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 있었던 대부분의 유출 사건에 대해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를 했을 뿐, 내용 자체를 부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근거다.

WP는 정보 유출 사태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지만, 국민에겐 크게 나쁠 게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쿠슈너와 배넌 등 최측근과의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 불투명한 소통 구조하에서 국민이 알 권리를 보장받고 잘못된 정책의 입안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극비 정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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