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키에 “한일갈등 중에도 한국행사 꼭 참석… 국민끼리는 친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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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부인 인터뷰]지한파 아키에 여사가 말하는 ‘한일 우정의 길’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55) 여사를 가까이에서 본 건 지난해 12월 초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국제여성회의 장이었다.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은 그날이었다. 여사는 동아일보를 잘 알고 있었고 2주 후 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후 부산 소녀상 문제가 불거져 무산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예정대로 진행됐다. ‘과거사 문제 등 얽히고설킨 문제들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와 미래 이야기만 나눠 보자’고 한 인터뷰였다. 인터뷰는 지난달 19일 오후 4시 도쿄 총리 관저에서 진행됐다. 소문난 한류 팬이어서 분위기도 풀 겸 한국 드라마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여사는 “맨 처음 본 한국 드라마는 ‘겨울연가’였는데 한국어 공부로 시작했다가 완전히 빠져버렸다”며 “배우 고 박용하 씨와 친했는데 돌아가셨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
 

아베 아키에 여사는 표현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솔직담백하고 시종일관 밝고 명랑했다. 소문난 한류팬인 그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갈등을 빚을 때에도 한국 관련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해 우애와 교류를 강조했다. 남편인 아베 신조 총리가 은퇴하면 “한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민간 교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아베 아키에 여사는 표현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솔직담백하고 시종일관 밝고 명랑했다. 소문난 한류팬인 그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갈등을 빚을 때에도 한국 관련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해 우애와 교류를 강조했다. 남편인 아베 신조 총리가 은퇴하면 “한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민간 교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한국에도 몇 번 왔는데 인상적인 기억이 있나요.

“(대중탕에서) 때를 밀었던 거요.”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여사는 “옷을 벗고 누웠는데 때를 밀어주시는 분이 어찌나 정성껏 씻겨주시던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솔직 담백함이 묻어났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하고 금방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다 따로따로예요. 처음 보는 사람과는 대화를 잘 안 하고 속도 잘 드러내지 않지요.”

―같은 점은요.

“정말 많아요. 부산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시모노세키에서 한일교류축제를 할 때 여러 번 가보았는데 누가 일본인이고 한국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김새가 우선 비슷하잖아요.”

2015년 김장담그기 축제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는 아키에 여사(오른쪽). 주일한국대사관 제공
2015년 김장담그기 축제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는 아키에 여사(오른쪽). 주일한국대사관 제공

―한국 음식은 뭘 좋아하세요.


“잡채요. 김치도 좋아합니다. 집에 김치냉장고도 있어요.”

―냉장고는 메이드 인 코리아겠죠.

“일본제 김치냉장고는 없으니까요. 한국분들이 대단한 거 같아요. 일본도 한국의 김치처럼 반찬에 빠지지 않는 쓰케모노(일본식 채소절임)가 있는데 전용 냉장고는 없거든요.”

말투는 절제되어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자유분방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평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행보 때문에 구설수도 있었던 그에게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일본 미디어들은 여사를 ‘가정 내 야당’이라고들 하던데요.

“어떤 가정도 부부나 가족이 다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 역시 총리 부인이라 해도 저만의 생각을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남편에게 전달되지 않는 여러 사람의 의견들을 취합해서 전하는 것도 아내의 역할이지요. 주변 사람들은 총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은 안 하려 하잖아요. 물론 야당은 예외지만요(웃음).”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가 매우 안 좋았을 때에도 한국에 대한 호감을 많이 표현했는데 남편 눈치가 보이지 않았나요.

“아니요. 한국 축제에 참석한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에 참석한 걸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비난 댓글이 많이 달려서 너무 슬펐어요. 국익이라는 게 있어서 정치적인 면에서는 부딪치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데에서는 좋은 면이 많이 있잖아요. 개인도 그렇지만 나라끼리도 서로 좋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에 굉장히 중요한 나라인 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여러 프로세스가 있겠습니다만, 민간 교류를 통해 민간끼리 계속 만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모노세키와 부산은 엄마배구대회를 열며 매년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경기를 하는데요, 경기가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너나없이 맛있는 거 먹고 술도 마시면서 함께 아리랑을 부릅니다. 정부 간에는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사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피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지만 서로 싫다고 등을 돌리면 거기서 끝나버리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맘에 안 드는 게 있어도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한국에 또 가보고 싶어요.”

―게이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등 역대 퍼스트레이디와는 다른 활동으로 화제를 모으던데요.

“에이즈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데 게이 중에 에이즈 환자가 많으니 그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참가하게 됐어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뭔가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총리 아내는, 정치인 아내는 이래야 된다’거나 ‘아베 가문의 며느리 혹은 여자는 이래야 된다’ 같은 틀이 있는데, 그쪽 세계는 경계가 없잖아요. 남자인데 여자이고, 여자인데 남자이고. 매우 복잡한 거지요. 그분들을 만나면서 ‘아, 뭐든 괜찮구나. 나 역시 너무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구나’ 안도감 같은 게 들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요.

“남편이 첫 번째 총리직을 그만뒀을 때요. 왜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많이 괴로웠지요. 그때는 웃는 사람을 봐도 울음이 나올 정도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었어요.”

―어떻게 이겨냈나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었다고 할까요. 지나고 보면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필요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아는데, 힘들 때는 그런 것을 모르지요. 저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 답을 찾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과 상담을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남의 의견이고 어떻든 결정은 내가 해야 하니까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다시 태어나도 아베 총리랑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는 많이 하고 있는데요(웃음), 솔직히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도쿄에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을 하면서 가장 배웠던 점이 있다면….

“아무리 작아도 어떤 조직이나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적자는 안 났나요.

“(웃으며) 아직 괜찮습니다.”

아키에 여사는 문밖까지 나와 허리 숙여 인사하며 전송했다. ‘총리 부인’의 근엄함보다는 ‘세련된 일본 여성’의 친절함과 소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일 두 나라 모두 전후세대가 기성세대가 된 지 오래지만 지난 아픔과 고통의 기억이 사그라들려면 여사 말대로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서로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에 공감했다. 국적도 직업도 달랐지만 한일 두 나라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웃 국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만큼은 차이가 없음을 공감한 인터뷰였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통역=송원서 동경문화재연구소 연구보좌원·이학박사
#아베#부인#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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