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다당제 등장이 촛불 성과… 中道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도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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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00일]촛불이후 한국 사회를 말한다
<1> 촛불과 민주주의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 지난해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100일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촛불은 무엇이었나? 광장의 에너지로 무엇을 개혁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조를 각인해야 하는가? 학계와 문화계 인사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촛불 100일과 이후 우리 사회의 길을 물었다. 》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멀지 않은 연구실에서 만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대강 
눈으로 봐도 젊은이들이 많더라”라며 “이들의 분노는 오늘날 몸으로 겪고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맞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멀지 않은 연구실에서 만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대강 눈으로 봐도 젊은이들이 많더라”라며 “이들의 분노는 오늘날 몸으로 겪고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맞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너무나 평범한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촛불 민심의 실망은 분명하다. 지금 보수 여당과 정부를 가리키고 있는 민심(民心)의 손가락질은 정권 교체 뒤 현 야당으로 향할 것이다.”

 격동의 현대 한국 정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표적 학자이자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4).

 촛불집회 100일을 앞두고 3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이 제기했거나 잠재한 이슈와 현 정치권의 발언 사이에 굉장한 거리가 있다”며 “근본적 개혁을 함축하고 있는 촛불의 요구를 읽고,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정치권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먼저 촛불집회를 평가해 달라. ‘촛불 혁명’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권위주의의 복원 시도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본다. 과거 민주화 투쟁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민주주의의 힘이기도 하다.”

 ―촛불집회를 이끈 동력은….

 “정치적 분노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불만이 깊숙이 깔려 있다. 성장을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실존의 차원에서 겪는 이들의 누적된 분노가 촛불의 동력이 됐다. 그런 이슈가 집회의 구체적 구호로 부각되지 않은 게 또 이번 촛불의 특징이다. 실체적 요구가 등장하면 분열될 수 있으니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퇴진으로 요구를 통일한 것이다. 시위대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 정당이나 대권 주자들이 제시하는 어젠다, 개혁안, 정책을 보라. 너무나 평범하다. 현 야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 교체가 됐다고 치자. 그 뒤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나. 촛불이 기껏 ‘최순실 농단’ 하나 해결하려고 온 나라를 들었다 놨을까.(선거 전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 정국이 펼쳐질 때부터 민심의 실망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연구실은 촛불집회가 매주 열린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다.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평소 성격을 보여주는 듯 깔끔했다. 양편 서가에 해외에서 발간된 정치학 서적이 가득했다.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와 인터뷰 내용이 사뭇 달라졌음에도 준비된 답변처럼 정돈돼 있었다.

 ―뭘 개혁해야 하나.

 “1960, 70년대 형성된 ‘박정희 패러다임’, 곧 국가와 재벌의 연합을 해체해야 한다. 재벌은 국가와 결합해 여러 특혜 속에 경제를 주도했고, 반대급부로 권력에 ‘준조세’를 내는 등 상호의존적 동맹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이 유착을 끝내고, 대기업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정치 제도는 어떤가.

 “(우리 정치사의) 양당은 사실상 같은 패러다임에 머무르면서도 과도하게 이념 대립적이고 투쟁 일변도의 정치 행태를 만들어 왔다. 내용 없는 극단 투쟁을 한 거다. 촛불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가 다당제의 등장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4개 안팎의 정당이 온건, 합리적이면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 센터(중도·中道)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필요하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게) 맘대로 정부 형태를 선택하라면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의회중심주의(의원내각제)가 최선의 정치 구조다. 양당제가 지속되면 분단 상황에서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투쟁이 재연될 거다.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최근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도 비슷한 주장인데 그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다. 다당제를 전제로 한 말이다. 지금 현실적으로 개헌까지 하고 대선을 치를 수 없다. 당장 의회중심주의 구현이 힘들다면 프랑스식의 ‘준대통령제’나 다당제 상황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결선투표제가 차선으로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로 귀결된다. 물론 결선투표제도 대선이 2, 3개월 남은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선거제도 바꾸고 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현실은 그냥 이대로 간다고 본다.”

 ―그럼 개헌은 언제 해야 하나.

 “다음 정권에서 다 열어놓고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 개헌 공약이 나오고 집권했을 때 정부가 중심이 돼 개헌한다든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않고서라도 하든가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은….

 “그런 주장이 은근히 많은데 난 동의하기 힘들다. 대통령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혁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자는 것 아닌가.”

 대권(大權) 주자들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지만 최 교수는 “정권 교체를 바랄 뿐이다. 후보들 간에 충분히 경쟁해야 할 시점에서 누군가를 편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 접근한 후보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대권에 대한 전망도 물었다. 우선 그는 “이번 선거는 여당의 궤멸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구조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갖는(유리한) 선거”라고 했다.

 ―보수층 민심이 결집해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가능성이 적다. 선거마다 보이지 않아도 ‘틀’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정당 정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와 비슷한 득표를 하기를 바란다.”

 ―지지율 1위인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야당이 배전의 노력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 사명이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실제 정책으로 만들 정치력과 결단력이 없다면, 집권한다 해도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국민의당이나 이른바 ‘중간 지대’는 어떻게 보나.

 “국민의당은 양당제 구조에서 온건 비판 세력으로 자기 위치를 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 기반이 약하다. 중간 지대는 양당 정치의 동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당장은 ‘중간 지대’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정립이 안 돼 있다.”

 ―세대교체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문제 제기가 아니다. 교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으로 올해 76세)도 있지 않은가.”

 ―정당이 당장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대로라면 대선 후보들은 작은 정책 대안을 모아 패키지 선거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집권 뒤에는 결과적으로 좁은 분야의 전문가인 관료 지배적 형태가 나타나고, 이는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별 차이는 없을 거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당파적으로 대선 캠프를 운영한다면 새로운 인적자원을 끌어낼 수 없다. 이것부터 달라져야 한다.”

조종엽 jjj@donga.com·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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