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빌라촌 파고드는 불법 민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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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채 빌려 외국인 상대 임대… 85%는 등록 안한 채 불법 영업
허용 안된 한국인에게 빌려주기도… 인근 주민들 소음피해 등 고통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 빌라에서 8년째 사는 양모 씨(43)는 최근 이사를 결심했다. 넉 달 전 같은 건물의 집 세 채를 매입한 김모 씨가 두 채를 민박으로 내놓은 뒤 소음 등 각종 불편을 견딜 수 없어서다. 양 씨는 “투숙객들이 밤새 시끄럽게 떠들고 들락거리는 데다 술에 취해 건물로 들어올 때면 무섭기까지 하다”라며 “김 씨에게 따져도 ‘합법적 영업이다. 주의시키겠다’는 말뿐”이라고 털어놨다. 양 씨가 빌라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량이 투숙객의 대형 캐리어에 두 번이나 긁혔지만 보상도 받지 못했다.

 5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2012년 일반 주택의 빈 방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숙박시설로 내놓을 수 있는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제도가 도입된 지 5년째. 국내 도시민박업의 중심지는 홍대입구나 합정역, 신촌 같은 대형 상권 인근의 ‘빌라촌’이다. 숙박 공유 서비스를 검색하면 마포구에만 300곳이 넘는 업소가 있다. 자택을 4년째 도시민박업소로 운영하는 장건호 씨(38)는 “집을 민박으로 내놓는 ‘호스트’가 서울에만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빌라보다는 오피스텔이 도시민박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는 ‘주거시설’만 도시민박업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에 어긋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숙박 공유 서비스 업체들은 도시민박업이 불가능한 오피스텔과 고시원 등 ‘근린생활시설’로 확인된 민박의 경우 정보 제공을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객실 수요가 빌라촌으로 집중되고 있다. 물론 아파트도 가능하지만 입주자회의나 관리사무소의 견제가 엄하다. 상대적으로 외부 개입 가능성이 적은 빌라에 수요가 몰리는 이유다. 

 문제는 빌라촌의 도시민박 역시 대부분 불법 영업이라는 것이다. 도시민박으로 영업하려면 관할 자치구에 도시민박업 등록을 해야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등록 업소는 878개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도시민박업을 하는 호스트의 85%가량은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는 셈이다.

  ‘주인이 거주하는 집’만 빌려주게 돼 있는 규정도 무용지물이다. 양 씨가 살고 있는 건물에서 영업 중인 김 씨도 각각 어머니와 아들을 가구주로 신고했지만 한집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두 채는 빈집이다.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울 때나 ‘남는 방’을 빌려주며 자연스레 외국인 관광객과 교류하도록 하는 취지가 무색하다.

 서민층이 주로 사는 빌라의 가격이 치솟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처음부터 민박 장사를 위해 빌라를 여러 채 사거나 임차하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라며 “이런 수요에 실제 거주 수요가 더해지면서 홍대입구와 합정역 인근 빌라 가격이 3.3m²당 2500만 원을 넘어설 정도”라고 말했다

 외국인만 투숙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지켜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민박업소 후기를 보면 이용할 수 없는 한국인 투숙객의 리뷰가 버젓이 올라 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이 반기마다 점검을 벌이지만 불법 업소를 모두 단속하기에는 역부족이다. 2015, 2016년 문체부·서울시 합동 점검에서 적발된 불법 도시민박업소는 106곳, 서울관광경찰대가 지난해 적발한 업소는 690곳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불법민박#소음피해#주민#임대#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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