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한라산은 내 운명… ‘한라산의 사계절’ 찍기 위해 447회 올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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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한라산 사진 전문가 김봉선 씨

겨울 한라산을 촬영하기 위해 어리목 탐방코스 만세동산에 오른 김봉선 씨. 독학으로 이룬 이론과 수많은 시행착오, 실전 경험 등으로 한라산 풍경사진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겨울 한라산을 촬영하기 위해 어리목 탐방코스 만세동산에 오른 김봉선 씨. 독학으로 이룬 이론과 수많은 시행착오, 실전 경험 등으로 한라산 풍경사진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지난달 21일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분화구 아래 해발 1600m 만세동산. 김봉선 씨(70)가 삼각대를 설치하고 캐논 EOS 5DsR 카메라를 얹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가운데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오르막길을 걸으며 생긴 몸의 열기는 삼각대를 설치하는 동안 냉기로 변해 온몸을 감쌌다. 손은 어느새 꽁꽁 얼었다. 배낭에 꽂은 페트병 식수에 살얼음이 생겼다. 상고대(나무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사이로 별빛이 쏟아졌다.

 해가 떠오르면서 드러난 백록담 분화구는 웅장함 그 자체였다. 암벽이 하얗게 얼어붙어 빙벽으로 변했다. 세계적으로 최대 군락을 이룬 구상나무는 푸른 잎이 하얀 눈꽃으로 변했다. 김 씨는 거대한 구름바다와 상고대 위로 번지는 일출의 기운을 잡았다. 백록담 암벽의 날카로운 선을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돌리며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3, 4시간 작업 끝에 겨우 만족할 만한 장면을 얻었다.

 “한라산은 내 일생을 관통하는 ‘화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오전 낮 오후, 시시각각 변하는 한라산의 얼굴을 마주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겨울 한라산은 최고의 기쁨과 희열을 안겨 주죠.”

○촬영부터 보정까지 독학 ‘결실’


 김 씨가 한라산을 오른 것은 이날이 447회째다. 한라산 정상에 가거나 어리목 만세동산, 영실 선작지왓 등 해발 1600m 이상을 오를 때만 산행 횟수에 넣었다. 한라산을 오를 때마다 산행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은 A4 용지로 870쪽에 이른다. 처음에는 ‘○일 한라산 백록담 등산’으로 짧게 적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느낌이나 가족 일, 역사적인 사건 등을 담았다.

 김 씨에게 산행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다. 변화무쌍한 속살을 끝도 없이 드러내는 한라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다. 1984년 11월 백록담 분화구 사진을 처음으로 촬영한 이후 32년 동안 그가 제주에서 찍은 필름은 무려 15만 컷, 디지털 사진은 20만 컷에 이른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한라산 사진이다. 이 사진들을 정리해 놓은 캐비닛이 방 하나를 차지한다. 사진 작업을 위한 컴퓨터와 스캐너, 빔프로젝터, 스크린 등 각종 장비가 거실과 안방까지 점령했다.

 한라산과 제주의 자연 풍광을 담은 김 씨의 사진은 크고 작은 국내 행사장에서 자주 쓰인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7 한국테마 사진 6장 가운데 산방산과 유채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2013년 미국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40곳을 선정해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중 12장이 그의 작품일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1998년 제주에서 처음으로 디지털사진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초청 등을 받아 30여 차례 작품 슬라이드 쇼를 했다.

 김 씨는 한때 펜탁스 마미아 유니버설 등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하다 지금은 주로 디지털카메라로 작업을 한다. 그동안 카메라 장비 구입을 위해 1억5000여만 원을 투자했다. 2006년 1억35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아파트(99m²)보다 더 많이 썼다. 장비를 보면 전문가임에 틀림이 없지만 지금까지 정식으로 사진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책을 찾아 읽으면서 독학으로 카메라 원리를 깨쳤고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감각을 익혔다.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넣은 뒤에는 파일의 저장 방식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씨름하기도 했다. 보정을 하는 포토샵 사용법도 홀로 정복했다.

 “드넓은 풍경을 선명하게 찍기 위해 보통 렌즈 조리개를 바짝 조이는 것이 상식으로 알려졌지만 현장에서 찍어 보면 오히려 선명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좀 찍는다는 사람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빛이 직선이 아니라 회전하고 굴절하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네모난 창을 통과하는 빛이 둥그런 형태로 비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기계적으로 카메라 조리개 값, 감도, 셔터 스피드를 정하기 전에 먼저 원리를 아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 한라산은 내 운명

 한라산을 자신의 손금 보듯 구석구석 꿰뚫고 있는 김 씨의 고향은 제주가 아니라 충남 아산시 온양이다. 댐 등 토목공사 현장 책임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5년제인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67년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사진 촬영은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두고 있다가 1981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할 때 큰 맘 먹고 ‘아사히 펜탁스 MX’ 카메라를 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셔터 소리가 너무 좋아 한동안 필름을 넣지 않고 셔터를 숱하게 눌렀다. 닥치는 대로 찍었고 사진을 뽑느라 수많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에서 포토샵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을 그때는 암실에서 다 해야 했습니다. 귀동냥을 하고 책을 읽었지만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서울까지 다니며 약품을 사서 직접 조제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때 사진에 관한 기초를 튼실하게 다져 놓은 듯합니다.”

 그렇게 사진에 빠져 가던 1984년, 제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한라산과 사진 촬영은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 당시 근무하던 울산화력발전소로 돌아왔지만 한라산 잔상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1986년 ‘어머니가 제주에 혼자 살고 있어서 돌볼 자식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제주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자신에게 ‘역마살’이 있는 것으로 여겼던 김 씨는 4, 5년 정도면 맘껏 사진을 찍고 돌아갈 줄 알았지만 떠나지 못했다. 2005년 한전을 정년퇴직한 이후 지금까지도 제주에 눌러앉아 있다.

 김 씨는 만족할 만한 순간 포착을 위해 3일 연속 한라산에 오르기도 하고 산속에서 추위에 떨며 1박 2일을 기다린 적도 있다. 절벽에서 굴러 정강이를 수십 바늘 꿰매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폭우가 쏟아졌다는 뉴스를 보고 백록담 만수(滿水)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올라간 적도 있다. ‘카메라를 들고 한라산에서 죽는 꿈을 꾼다’는 그는 영정 사진을 백록담 분화구 밑에서 찍은 것으로 정했다고 했다.

 “한라산 바위에서 기품 있는 꽃을 피워 내는 돌매화, 선작지왓의 설원 풍경, 구상나무에 피어난 상고대, 운해의 움직임까지 모두 매력적입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정상에서 일순간 잠잠해지면서 여명을 뚫고 붉은 해가 화산이 터지듯 솟구치는 광경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앞으로 걸음을 옮길 기력이 남아 있는 한 한라산을 카메라에 담을 겁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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