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끝날 때까지 못 간다”… 떡포장 18시간만에 ‘떡실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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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일’ 미끼로 장난칠 겁니까
나쁜 알바 실태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간 1일 서울 중구 명동 길거리에서 인형 탈을 쓴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간 1일 서울 중구 명동 길거리에서 인형 탈을 쓴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떡 공장에서 떡실신 했다.’

 농담 같은 표현이지만 간호학과 학생 이모 씨(35)에게는 현실이었다. 지난해 2월 그는 떡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다가 정말로 실신할 뻔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라 비싼 전공서적 구입비라도 벌어보려 시작한 알바였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알바 구하기가 힘들었던 이 씨가 어렵게 찾아낸 곳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떡 공장. 시급은 6300원. 설 명절을 대비한 일주일 단기 알바였다.

 하루 5, 6시간을 근무한 2일 차까지는 할 만했다. 문제는 3일 차부터 일어났다. 오전 9시에 출근한 이 씨는 공장 관계자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오늘 집에 갈 생각 하지 마라.” 일거리가 많다는 뜻의 농담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시작한 찰떡 포장이 밤늦도록 끝나지 않았다. 바람 떡, 콩 시루떡, 팥 시루떡 등을 붙잡고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다음 날 오전 3시 30분. 이 씨는 18시간 30분 동안 일했다. 20대 알바생들이 중간에 항의했지만 공장 관계자는 “잔업이 다 끝날 때까지는 못 간다”며 붙잡았다. 이 씨는 “한 푼이라도 벌고자 이를 악물고 견뎠다”며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는 모습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또 “심지어 유통기한이 다 된 떡을 재포장하기도 했다. 사회의 썩은 부분을 목격한 씁쓸한 알바였다”고 말했다.

인권 비웃는 ‘나쁜 알바’


 취업 전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울리는 나쁜 알바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노동을 착취하고 성희롱과 폭행, 인권유린까지 일삼는 파렴치한 고용주가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과 알바생 등 고용시장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을(乙)의 절규가 그치지 않는 이유다.

 신모 씨(27·여)는 2년 전 겪은 끔찍한 기억 때문에 PC방 근처에 가지 않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신 씨는 사장으로부터 폐쇄회로(CC)TV를 통해 실시간 감시를 당했다. 카운터에서 실수로 물이라도 엎지르면 곧바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미친 ×, 정신 못 차리냐”는 욕설이 들려왔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장과 손님들의 성희롱이었다. 중년의 남자 사장은 “우리 알바생 힘들지?”라며 어깨와 허리를 은근슬쩍 만져댔다. 사장이 또 다른 여대생의 엉덩이를 만지는 걸 본 적도 있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사장이 입을 맞추려고 달려든 날 그 여대생은 펑펑 울며 PC방 알바를 그만뒀다. 신 씨는 “당장 생활비가 급해 참기만 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취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자격증 취득 조건을 빌미로 노동을 착취하는 경우도 있다.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생이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하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병원 등에서 일정 기간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생을 뽑는 병원보다 지원자가 훨씬 많아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도권 한 대형병원의 수련생 모집에서 40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대학원 심리학과 졸업생 A 씨는 수련 기간 3년간 거의 매주 7일 근무를 했다. 심리 검사와 병원 내 수련생 필수 활동인 그룹 스터디, 슈퍼비전(수련생 감독관에게 평가·지도를 받는 과정), 논문 조사·발표 등을 병행하려면 주 5일 근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거의 매일 야근했지만 시간외 수당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여름휴가 3일 동안은 집에서 일만 했다. A 씨가 이렇게 일해서 번 돈은 한 달에 고작 100만 원 남짓이다. A 씨는 “병원은 갑(甲)이고 자격증이 필요한 수련생은 을(乙)이기 때문에 참는 수밖에 없다”며 “지방 병원은 무급 수련생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소연도 못 하는 청소년 알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얕잡아 보는 나쁜 사장들 탓에 청소년 알바생의 인권 유린은 더욱 심각하다. 고등학생 염모 군(18)은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고깃집에서 숯불을 나르는 알바를 했다. 한여름에 매일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는 것보다 참기 힘들었던 건 술 취한 손님들의 폭행과 욕설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며 뺨을 때린 적도 있다. 얼굴과 옷에 침을 뱉어도 화를 낼 수 없었다.

 음식점 사장은 염 군이 맞는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몰래 뒷문으로 나가 눈물을 훔치는 염 군에게 사장은 “돈을 벌고 싶으면 다 참아야 한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염 군은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최저 시급도 받지 못했다. 함께 일한 대학생 형들은 시급을 6500원 받았지만 염 군은 5500원을 받았다.

 청소년 알바생에 대한 노동 착취는 심각한 수준이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실에 따르면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청소년 알바생 대상 부당행위에 대한 합동 점검을 실시한 결과 최근 5년간(2012∼2016년) 총 792개 업소에서 1622건이 적발됐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38%), 최저임금을 고지해주지 않고(20%), 임금대장을 작성하지 않은 경우(19%) 순으로 많았다. 일반음식점(41%)이 가장 많았고 커피전문점(19%), 패스트푸드점(9%), PC방(8.5%) 등이 뒤를 이었다.

“알바 착취 사업주 엄벌해야”

 최근 알바 구직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알바생들의 알권리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나선 것이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은 지난해 12월부터 ‘기업평판정보’ 서비스를 도입했다. 알바 구인 공고가 뜨면 실제로 일을 해본 근로자들이 해당 업체에 대한 평가 글을 공유해 악덕 사업주나 유해 환경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아르바이트 구직 포털 알바몬은 2015년부터 임금 체불 사업주 명단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공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국 840여 개 체불 사업주 명단을 홈페이지에 띄웠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인 알바생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연주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상담부장(노무사)은 “알바생이 노동청에 임금 체불을 신고할 경우 체불 금액의 전부를 다 받아내는 경우는 드물다”며 “사업주들이 대충 합의하고 끝내자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엄격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바생들에게 피해 구제 방안 등 노동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안희원 고용노동연수원 사이버교육팀장은 “어린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자신의 권리가 뭔지 몰라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나 공익 교육시설 등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알바#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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