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미끼로 장난칠 겁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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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취업사기 백태

“내가 바로 청와대 비선 실세다. 취업 못한 아들, 내가 해결해주겠다.”

 황당무계한 말에 부모 7명이 속았다. 오랜 기간 취직하지 못한 자식을 둔 부모들이었다. 이들의 절박함을 이용한 취업 사기꾼은 손쉽게 3억 원가량을 챙겨 달아났다. 1년여 전 인천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이면에 구직자의 피눈물을 빼는 추악한 사기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취업 등 알선 사기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2013년 3126명에서 2015년 3236명으로 늘었다. 지방에서는 더욱 극성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비해 일자리가 훨씬 부족한 탓이다. 지난해 광주지검은 3개월 동안 취업사기범 26명을 검거했다. 대부분 관공서와 대기업 등의 ‘높으신 분’ 인맥을 내세워 청탁 대가로 돈을 가로챘다.

 아르바이트(알바) 시장은 더 열악하다. 최저시급 미지급과 임금 체불, 성희롱 등 사기 수준을 넘어 기본적인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알바생들은 어디에 하소연할지도 몰라 당하고만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국내 실업자 수는 101만2000명, 여기에 청년 취업 준비생과 이른 나이에 실직한 30, 40대 등을 더하면 사실상 실업자 수는 450만 명을 훌쩍 넘긴다. 실업자가 증가한다는 것. 이는 바꿔 말하면 취업사기꾼의 먹잇감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장기 불황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구직자의 절박함을 이용한 취업 사기가 극성이다. 본보 취재진이 지난달 24일 오전 5시경 서울 광진구 새벽 인력시장 쉼터에서 만난 30대~50대 일용직 구직자 대부분은 자신이나 지인이 취업 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장기 불황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구직자의 절박함을 이용한 취업 사기가 극성이다. 본보 취재진이 지난달 24일 오전 5시경 서울 광진구 새벽 인력시장 쉼터에서 만난 30대~50대 일용직 구직자 대부분은 자신이나 지인이 취업 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軍 가짜 공문까지 보여주며 “군무원 자리 났는데…”

“제가 재벌가 사모님들을 오랜 기간 모셨는데, 따님 취업을 좀 부탁해 볼까요?”

 서울의 한 아파트 정문 앞. 삼삼오오 모여 취업 못한 자식들 걱정을 늘어놓던 엄마들 곁으로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굴지의 대기업 안주인들을 모신다’는 의문의 여성. 이 여성은 재벌가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꺼냈다.

 “친구 딸도 항공사에 합격하도록 제가 도와줬어요. 사모님이 제 말이라면 다 들어주십니다.”

 엄마들은 처음 본 여성이었지만 재벌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자녀 취직 얘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얼마 뒤 “사모님께 부탁하려면 필요한 게 있는데…”라는 여성의 말에 부모들은 홀린 듯 700만 원씩을 건넸다.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에 빠진 대한민국.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구직자만큼 이들을 노리는 취업 사기꾼도 넘쳐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취업 사기 실태를 들여다봤다.

공시생 부모도 속인 황당 사기


 아들 방문을 열자 엄마는 한숨부터 나왔다. 공무원 되겠다고 몇 년째 시험공부 중인 아들이 안쓰러웠다. 그 순간 며칠 전 지인에게서 받은 공문 한 장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며 건네받은 공문은 ‘국방경영위원회’ 직인이 찍힌 채용 안내서였다.

 “대통령비서실장과 친한 형님이 있는데 그 형님이 국방부 산하 비밀조직을 만들어요. 7급 군무원 자리가 있다는데, 다리를 좀 놓아 드릴까요?”

 공문을 건넨 지인의 말은 이랬다. 요즘 공무원 경쟁률이 치열해서 인맥 없이는 될 수 없다는 것. 의심이 들면 국방부 앞으로 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부모는 아들 손을 잡고 지인과 약속한 국방부 앞으로 갔다. 비서실장과 친하다는 70대 남성 민모 씨가 나타났다. 그는 국방부 정문 앞을 지키던 군인과 몇 마디 주고 받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지인은 “오늘 국방부 비밀조직 주재 국무회의가 있어 들어가시는 거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정작 정문에선 “소변이 급하다”는 민 씨를 화장실이 있는 청사 안으로 안내한 것뿐이었다.

 이를 알 리 없는 부모들은 국방부로 직접 들어가는 민 씨를 본 후 그대로 은행으로 달려가 지인에게 채용 빌미로 수백만 원을 송금했다. 당초 약속과 달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다는 군무원 채용 면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때마다 지인은 “야당이 방해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나 미뤄졌다”고 둘러댔다. 실제로 늘 여야는 싸웠고, 대통령은 자주 순방을 나갔다.

 수사는 경찰 친구에게 건넨 아버지의 ‘자랑’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우리 아들이 곧 군무원으로 채용될 것 같아. 군무원 되면 잘 도와줘라.” 이렇게 공무원 취업 사기단이 취준생 및 공시생 280여 명에게서 120억 원을 가로챌 동안 사기를 의심하고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느 ‘청년 명퇴자’의 눈물


 “제가 그 광고만 보지 않았어도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30대 명예퇴직자인 김한수(가명·38) 씨는 분노 섞인 울음을 토해냈다.

 김 씨가 다니던 회사는 계속된 경기 불황에 실적이 오르지 않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김 씨는 명예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을 가지고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심기일전을 다짐한 김 씨. 온라인 구인사이트에 접속하자 배너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네스코도 반한 자연경관 호주에서의 삶, 연봉 1억 원, 1년 후 영주권 보장.’ 배너광고를 클릭해 접속한 홈페이지 상단에 호주 유명 기업 로고와 함께 국내 대기업 로고도 있었다. 게시된 번호로 연락하자 회사 측은 “손재주 좋은 국내 전문기술인들이 호주 현지 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연계 채용을 지원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1차 합격 후 2차 면접일. 김 씨가 찾은 사무실 벽에는 ‘호주 ○○사의 한국지사’란 증명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 현지 인사담당자 J 씨가 등장했다. 자신을 한국계 호주인이라고 소개했다. 면접은 순조롭게 끝났다. 그러나 며칠 뒤 김 씨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회사 직원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사기사건 수사를 하던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김 씨의 연락처를 확인해 연락한 것이다. 하지만 김 씨는 이미 명퇴 위로금 2억 원 중 절반 가까운 금액을 진행 비용으로 쓴 뒤였다.

 경찰 조사 결과 J 씨는 현지의 불법 체류자였고 홈페이지도 가짜였다. 퇴직자를 노린 해외 취업 사기에 김 씨가 걸려든 것이다.

‘아줌마 성공시대’ 꿈꾼 경단녀의 눈물


 서울 종로의 한 고층빌딩을 올려다보던 박선희(가명·48) 씨의 가슴이 뛰었다. 10년 전 출산 후 육아와 업무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다 결국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던 박 씨. 하지만 중학생 딸에게 드는 사교육비와 전 같지 않은 남편의 월급에 박 씨는 다시 구직에 나섰다.

 박 씨가 찾은 종로의 한 사무실은 며칠 전 그가 올린 구직희망서를 보고 ‘면접 보러 오라’며 연락한 곳이었다. “주부시죠? 주부들이 일하기 딱 좋은 회사예요. 아이 학교 보내고 오전 10시쯤 출근해서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후 3시쯤 퇴근할 수 있어요. 야근도 없어요.” 박 씨가 찾던 회사였다.

 “내 모습이 어떻습니까?” 면접장에서 만난 회사 대표의 첫마디였다. 명품 신발에 명품 옷을 입은 여성 대표는 화려했다. “우리 회사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줬어요. 경력단절여성을 내치는 대기업은 좋은 회사가 아니에요. 작아도 아줌마 성공시대를 열어주는 우리 회사가 정말 좋은 거죠.” 박 씨와 다른 10여 명의 면접자는 ‘꼭 합격하고 싶다’고 외쳤다.

 하지만 무역회사라는 곳의 일은 예상과 달랐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외국산 라텍스 베개나 영양제, 분유 등을 팔았다. 박 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실장이 그를 불렀다. “대표님께서 선희 씨를 예쁘게 보셨는데 왜 나가요. 곧 실장으로 승진시킬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말하지 말아요.” ‘승진’이란 말에 흔들린 박 씨에게 얼마 뒤 실장은 유니폼을 건넸다. 정직원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월급 25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찰 수사로 덜미를 잡힌 이곳은 다단계 판매업체였다. ‘경단녀 친화기업’으로 홍보해 주부들만 골라 채용한 뒤 정직원 채용과 승진 등을 빌미로 물건을 팔게 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실장은 시댁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10년 후 성공한 내 모습을 상상하라는 실장 말에 홀린 듯 물건을 자비로 샀다. 가족들은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일자리#취업자#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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