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정치권 밥그릇 싸움 빠진 동안… 청년 10명중 4명 실업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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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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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망치는 경제]리더십 붕괴속 경제 표류 이탈리아

총리 교체 후에도 정치혼란 계속 지난해 12월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파올로 젠틸로니
 신임 총리에게 내각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건네며 권력을 이양하고 있다. 렌치 전 총리는 정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헌 
국민투표를 시도했다가 부결된 이후 물러났다. 리더십 붕괴와 조기 총선 가능성으로 이탈리아 정치권은 경제를 돌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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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교체 후에도 정치혼란 계속 지난해 12월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파올로 젠틸로니 신임 총리에게 내각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건네며 권력을 이양하고 있다. 렌치 전 총리는 정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헌 국민투표를 시도했다가 부결된 이후 물러났다. 리더십 붕괴와 조기 총선 가능성으로 이탈리아 정치권은 경제를 돌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DB
 “대학에서 유익한 것을 배우면 뭐합니까. 아무 쓸모없었어요.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에서 지진공학과 재생에너지 박사학위를 딴 라파엘 드로사(36)는 ‘잃어버린 세대’(2000년대 중반부터 취업전선에 나선 이들)로 불린다. 영어도 능숙한 드로사 씨는 10년 동안 직업을 찾아 헤매다가 같은 처지의 친구와 함께 최근 패스트푸드점을 열었다.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주요 국가 중 지난해 실업률이 오른 유일한 나라다. 지난해 말 현재 전년보다 0.4%포인트 오른 12%를 돌파했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전년보다 2%포인트가 더 높아져 40%를 돌파했다. 청년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실업자인 셈이다.

 이탈리아는 저성장과 고복지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 유럽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달리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주요 고비마다 발목을 잡는 정치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전 세계에 ‘스트롱맨 리더십’이 유행이지만 이탈리아는 ‘약하고 비효율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1930년대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이후 독재자 등장을 사전에 막기 위해 상원과 하원에 동일한 입법권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노동법 조항 한 개를 고치는 데만 3년이 걸릴 정도로 법 개정이 힘들다. 이로 인해 정치는 비효율적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63개 정부가 들어설 정도로 행정부의 리더십도 허약해졌다.

 이 때문에 마테오 렌치 당시 총리는 지난해 12월 상원의 힘을 빼고 다수당에 많은 권한을 주는 방향으로 헌법을 고치는 국민투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경제 실정에 대한 여당 심판 여론에 밀려 국민투표가 부결됐고 자신도 사임했다. 반대표를 던진 주요 세력은 ‘앵그리 영맨’이었다. 청년실업률이 56%에 달하는 시칠리아 섬은 72.2%가 개헌 반대표를 던졌다.

 렌치의 사임으로 정치 불안정성이 커지자 바로 경제가 타격을 받았다. 금융개혁이 좌초되면서 정부는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 은행의 부실 채권을 해결할 민간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결국 200억 유로(약 25조 원)에 달하는 구제금융 투입을 결정했다. 133%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약 1%포인트 더 올라갔다.

 어려워진 내수는 더 강력한 실업 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적 항공사 알리탈리아는 만성 적자를 줄이기 위해 1600명 감원을 예고했고 노조는 23일 파업을 준비 중이다. 이탈리아의 최대 은행 우니크레디트는 지난해 12월 “2019년까지 직원 21%를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와중에도 정치는 경제를 외면하고 차기 총선 승리에만 몰두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주 일부 위헌 요소만 고치면 선거법을 즉각 선거에 적용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이르면 6월경 조기 총선이 가능해지면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실업자의 40%가 지지하는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은 이 혼란의 가장 큰 수혜자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성운동은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인터넷 무료 제공, 주 20시간 노동 등 달콤한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할 기성 정치인들은 제 밥그릇 챙기는 데만 열심이다. 민주당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는 렌치나 경제 실패와 부패 스캔들의 주역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모두 선거 승리로 ‘왕좌’에 복귀할 생각뿐이다. 올 하반기 퇴직이 예정된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조기 총선을 반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이런 상황은 2012년 실업률 27%, 청년실업률 56%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했던 스페인이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노동법 국회 통과로 회생의 기회를 잡은 것과 대비된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현재 18.6%로 떨어졌다. 지난달 청년실업률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42%까지 내려갔다.

 도이체방크의 마르코 스트링가 애널리스트는 “이탈리아의 만성적인 정부 불안정성이 중장기적으로 경제·금융·정치 모든 분야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이탈리아#정치#경제#청년 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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