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가 만난 사람] 윤덕여 감독 “북한에서 남북대결…승리에 필요한건 평온한 멘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3일 05시 45분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4월 3일부터 11일까지 북한에서 2018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경기를 치른다. 인도, 홍콩, 우즈베키스탄은 객관적 전력상 한 수 아래의 상대들이지만, 북한은 껄끄럽기 그지없다. 더욱이 원정경기라 4월 남북대결은 우리 여자대표팀과 윤 감독의 부담감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윤 감독은 “이제 북한을 이길 때도 됐다”며 필승의지를 드러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4월 3일부터 11일까지 북한에서 2018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경기를 치른다. 인도, 홍콩, 우즈베키스탄은 객관적 전력상 한 수 아래의 상대들이지만, 북한은 껄끄럽기 그지없다. 더욱이 원정경기라 4월 남북대결은 우리 여자대표팀과 윤 감독의 부담감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윤 감독은 “이제 북한을 이길 때도 됐다”며 필승의지를 드러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북한전 영상분석 통해 실점 부분 보완
낯선 북한원정, 선수들 담대함 갖춰야
기술적인 부문, 한국이 북한 앞서기도
반드시 이겨 국민들에게 힘 보태고 싶다

2017년에도 한국축구의 시계바늘은 바쁘게 돌아간다. 당장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남자대표팀은 3월 23일 중국원정경기를 시작으로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향한 후반기 여정을 재개한다. 신태용 감독의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국내 6개 도시에서 열릴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개최국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 여기에 최근 또 하나의 중요한 일정이 추가됐다. 지난달 21일 요르단 암만에서 진행된 2018여자아시안컵 예선 조 추첨식 직후다. 윤덕여(56) 감독이 지휘하는 여자대표팀이 갑작스레 주목받게 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여자축구 남북대결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우리 여자대표팀은 4월 3일부터 11일까지 북한에서 예선 B조 4경기를 치러 1위를 차지해야만 내년 여자아시안컵 본선(요르단 개최) 출전권을 얻는다. 더욱이 내년 여자아시안컵 본선에는 2019프랑스여자월드컵 본선 출전권이 걸려있다. 남북대결, 북한원정, 월드컵 1차 관문 등 부담스러운 난제가 한꺼번에 덮쳤다. 역대 여자축구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1승2무14패로 절대열세다. 여자대표팀의 북한원정경기 또한 처음이다. 2015년 캐나다여자월드컵 16강 진출을 토대로 다음 대회에서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려던 우리 여자대표팀과 윤 감독의 꿈 또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설 연휴에도 북한전 구상에 몰두한 윤 감독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부담스러운 일전, 남북대결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국면에서 북한과 만나게 됐다. 그것도 원정경기라 부담이 더 커졌다.

“북한과 같은 조에 걸릴 확률이 3분의 1이었는데, 막상 조 추첨 결과를 접하고 보니 당혹스러운 마음이 컸다. 조 추첨식 직후 AFC(아시아축구연맹) 관계자로부터 뒷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AFC가 사전에 시뮬레이션(모의 추첨)을 했을 때는 한 번도 우리와 북한이 같은 조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어찌됐든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는지가 중요해졌다. 그동안 북한과의 대결을 돌이키면서 영상을 돌려보고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북한, 중국, 일본까지 아시아 4강은 세계 수준이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 중 북한의 전력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나?

“호주까지 아시아로 나와서 5강이다. 기본적으로 FIFA 랭킹만 보더라도 아시아가 초강세다. 호주(6위), 중국(13위), 북한(10위), 일본(7위), 한국(18위)은 세계대회에서도 통하는 실력을 갖춘 팀들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예선에서 한 조가 돼 걱정이 크다. 얼마 전 코칭스태프 미팅을 했고, 북한의 전력에 대해 영상분석관을 통해 자료들을 요청했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실점한 부분, 그것도 후반 실점이 많았던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북한의 가장 위협적인 부분과 취약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김광민 감독이 (대표팀과) 4.25팀을 동시에 이끌고 있다. 북한에서 최강팀이다. 1년 내내 함께하고 있어서 선수들이 감독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팀 조직도 강하다.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강하다. 체력이 뛰어나니 공수전환이 아주 빠르게 이뤄진다. 약점이 많진 않지만, 롱볼에 의존한 경기운영은 약점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중요하다. (북한이) 세련된 플레이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지만, 세계에서 그 플레이가 먹히고 있다.”

-원정이라 경기 외적인 부분도 큰 변수로 우려된다.

“이중고다. 나나 선수들로선 정말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다. 북한에서의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와 환경, 특히 일방적인 응원 등이 힘들게 작용할 것이다. 다만 예전에 내가 경험한 바(1990년 10월 11일 통일축구 평양경기)가 있다. 선수들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 중이다. 선수들이 이런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함도 갖춰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격차가 많이 줄지 않았나? 오히려 우리가 낫다고도 보이는데.

“솔직히 우리는 선수층 자체가 넓지 않고, 인프라 문제로 아직은 불리한 편이다. 북한은 대체자원이 끊이질 않는다. 세련미는 떨어져도 조금씩 전술적 유연성이 생기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일부 선수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북한 선수들을 능가하기도 한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북한전(2014년 9월 29일 준결승·1-2 역전패)은 정말 대단했다.

“나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다. 북한전을 위해 우리 선수들이 많은 눈물과 땀을 쏟았다. 마무리가 안타까워 더 생생하다. 지난해(2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예선 당시 북한과 아쉽게 1-1로 비긴 경기도 기억난다. 대부분 아쉬웠던 기억들이다.”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북한 여자축구대표팀 김광민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북한 여자축구대표팀 김광민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남북대결, 통일축구, 평양의 기억

-북한 김광민 감독과 인연도 깊은데.

“김 감독과는 함께 대표선수를 경험했다. 4차례 정도 만난 기억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치른 이탈리아월드컵 예선(1989년 10월 16일·1-0 승) 때 처음 만났고, 지금은 동아시아대회지만 그 전신인 중국 다이너스티컵(1990년 7월 29일·1-0 승)에서도 만났다. 또 통일축구(1990년 10월 11·23일)를 홈(1-0 승)과 원정(1-2 패)으로 두 차례 치렀다. (김 감독은) 아주 빨랐고, 투지도 강했던 선수로 기억한다. 오른쪽 풀백이었다. 지난해 11월에도 말레이시아 AFC 여자축구 지도자 세미나에서 만났는데, 자신들이 대회(아시안컵 예선) 개최를 신청했다고 하더라. 당시만 해도 (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과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FIFA 랭킹이 워낙 높아서 서로 톱시드로 배정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의 상황이 전개됐다. 난감하다.”

-과거 통일축구에 참가한 경험을 떠올린다면?

“(1990년 10월 11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했다. 관중이 15만명이나 몰려들었다. 아시안게임 직후라 (귀국하지 않고) 여자대표팀과 함께 베이징에서 곧바로 평양으로 이동했다(여자대표팀은 경기 없이 남북합동훈련만 진행했다). 당시에는 남북화해 무드가 흘렀고, 그 일환으로 축구대회가 성사됐다. 평양시민들의 엄청난 환대, 순안공항에서 고려호텔로 이동하는 길에 줄지어 늘어선 환영인파에 놀랐다. 환영을 받으면서도 좀 섬뜩했다. 평양에선 철저히 주어진 틀에 맞춰서 움직였기에 자유롭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래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라 그 때와는 분위기가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타이틀을 걸고 하는 대회라 과거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유독 남북대결을 많이 경험했다. 남북대결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대표 감독으로선 이번 북한전을 치르면 5경기째다(지난 4경기 전적은 1무3패 열세다). 북한이라는 팀이 처음에는 굉장히 높은 산이었다. 그런데 점차 그 높이가 낮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한 번은 이겨야 하지 않겠나. 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북한은 좋은 팀이고, 객관적 전력상 우위에 있지만 축구에는 변수가 있다. 노력에 의한 땀으로 이를 극복할 때가 됐다. 이길 힘도 우리 스스로 갖췄다고 자부한다. 과거에는 막연하게 북한이 두려웠다면, 지금은 지난해 올림픽 예선(1-1 무승부)을 계기로 자신감이 크게 높아졌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큰 이변을 만들고 싶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여자축구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여자축구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대표팀의 현주소는?

-우리 대표팀으로 화제를 돌리자. 2013년부터 여자대표팀을 이끌고 있는데.


“2013년부터 5년째 여자대표팀 감독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년 캐나다(여자)월드컵을 통해 계획했던 바를 어느 정도 이뤘다. 월드컵 16강을 통해 여자축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관심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이번 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과 마주치게 됐으니, 여론의 관심이 또 커질 것 같다. 캐나다월드컵을 최고 선수들로 치렀고, 그 뒤에는 다음 월드컵에 대비해 세대교체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부득이하게 변수가 발생했다. 기존의 경험 많은 선수들이 필요해지지 않았나 싶다. 나와 오래 함께했던 선수들이 경험을 토대로 이번 평양원정경기를 치르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되지 않겠나. 아무래도 세대교체 타이밍을 다소 늦춰야 할 듯하다.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야 다음 단계(2018여자아시안컵 본선 겸 2019프랑스여자월드컵 예선)를 밟을 수 있다.”

-우리 대표팀에서 중심적인 선수들은 누구인가?

“공격에선 지소연(26·첼시 레이디스), 미드필더 조소현(29·고베 아이낙), 수비 심서연(28·이천대교), 골키퍼 김정미(33·인천현대제철) 등이 중심을 잡아줘야 할 테고, 월드컵을 통해 성장한 강유미(26·화천KSPO), 장슬기(23·인천현대제철) 등이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면 북한원정에서도 해볼 만하지 않겠나.”

-남은 2개월 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할 부분은 무엇인가?

“막연한 두려움의 해소가 최우선이다. 정말 평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낯선 환경과 경직된 상황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어려울 수도 있다. 최대한 평온하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윤덕여 감독은?

▲생년월일=1961년 3월 25일
▲출신교=경신중~경신고~성균관대
▲프로선수 경력=울산현대(1986~1991년), 포항 스틸러스(1992년)
▲지도자 경력=포항제철중 감독(1993~1995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1996~1999년),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2001~2003년), 울산현대 코치(2004~2005년), 경남FC 수석코치(2006~2009년), 대전 시티즌 수석코치(2010년), 전남 드래곤즈 수석코치(2012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2013년~현재)

정재우 스포츠1부장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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