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보릿고개’ 지쳐… 年이자 28% ‘IT전당포’ 찾는 청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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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궁하자 IT기기 맡기고 급전대출

 대학생 이모 씨(24)는 최근 학교 근처 ‘IT전당포’를 찾았다. 얼마 전 20만 원을 빌리며 맡긴 갤럭시S7 스마트폰을 되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씨의 스마트폰은 없었다. 용돈이 궁해 두 달간 5만 원가량의 이자를 내지 못하자 전당포에서 경매로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씨는 “돈을 갚지 못하면 경매에 넘기는 게 대출 조건이었다”며 “하지만 미리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소모 씨(25)도 지난해 여름방학 때 디지털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겼다가 낭패를 봤다. 추석 연휴와 대출 만기일이 겹치는 바람에 뒤늦게 전당포를 찾았지만 카메라는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태. 빌린 돈에 20만 원을 더 내고서야 겨우 카메라를 찾을 수 있었다.

○ ‘월 이자율 2.3%’의 유혹

 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한 방학 기간에 정보기술(IT) 기기를 맡기고 소액을 대출해주는 IT전당포를 찾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PC 등을 맡기고 20만∼40만 원씩 소액 대출을 받는다. 전당포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자율 2.3%를 ‘합리적인 금리’라고 홍보하지만 이는 연간 이자율이 아닌 월 이자율이다. 연 이자율로 환산하면 법정 최고금리인 27.9%다. 또 계약 과정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거나 통보 없이 물건을 경매 처분해 버리기도 한다. 금융거래 정보나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IT전당포. 기자가 태블릿PC 한 대를 직접 감정받았다. 구입 2개월 남짓 된 아이패드의 감정가는 40만 원. 월 이자는 2.325%로 첫 달 이자는 9300원이다. 1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면 갚을 돈은 50만 원이 넘는다. 전당포 관계자는 “한 달이라도 이자를 내지 않으면 바로 경매로 처분한다”고 강조했다.

 이자 외에도 ‘감정료’라는 명목의 돈을 추가로 요구했다. 감정가의 2% 수준으로 40만 원을 대출받을 경우 8000원을 따로 내야 한다. 대출 첫 달 내야 할 돈은 원금의 10% 의무 상환액(4만 원), 이자(9300원), 감정료(8000원) 등을 합친 5만7300원. 또 다른 IT전당포에서는 부피가 비교적 큰 노트북 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를 맡길 경우 보관료로 1만, 2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안내했다. 법정 최고금리에 포함되지 않는 감정료와 보관료 명목을 따로 만들어 꼼수로 추가 이익을 보고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생들은 손쉽게 돈을 가질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서울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A전당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20∼29세 고객의 계약이 연평균 286건으로 전체의 20.7%를 차지했다.

 금융 거래 경험이 적은 일부 학생은 ‘월 이자 2.3%’를 연이자로 오인하기도 한다. IT전당포에서 만난 대학생 손모 씨(23)는 “방학이라 아르바이트가 끊겨 용돈이 필요해 120만 원짜리 카메라 렌즈를 맡기러 왔다”며 “2%대 이자면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한 달에 이자가 몇천 원밖에 안 되니 새 학기 시작되고 알바를 구해서 금방 갚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100곳 중 84곳이 불법 영업”

 최근에는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대출도 등장했다. 그만큼 대출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인터넷 전당포’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대출을 신청하고 전자제품을 택배나 퀵서비스로 보내면 대출금을 계좌로 이체해 준다. 최근에는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면 바로 대출 가능 금액을 알려주고 제품을 가지러 오는 출장 서비스도 제공한다.

 업체가 늘어난 만큼 소비자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수도권 소재 인터넷 전당포 100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84곳이 법정 최고금리 이상을 요구해 불법 영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체 약관이나 계약서를 사용하는 93개 전당포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기재했거나, 법정 필수 기재 사항을 누락한 계약서를 사용했다.

 일부 인터넷 전당포는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IT전당포 업체명이 적힌 사업자 등록증과 대부업 등록증을 제시하며 상대를 안심시킨 뒤 계약금만 받고 잠적하는 것이다.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는 최근 이런 수법을 반복한 일부 누리꾼을 강제퇴출 조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용대출이 불가능한 대학생을 위한 합리적인 금융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속적인 경제 불황으로 정규직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일자리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현재 소지품이라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부업 피해를 구제받기 힘든 상황인 만큼 대학생을 위한 합리적 소액대출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고야 best@donga.com·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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