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교체 접은 반기문…민심은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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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전격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되면서 저와 가족,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고 국민에게도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밝혔다. 47년 외교관의 정치인 변신 시도는 20일 만의 짧은 실험으로 끝났다. ‘보수의 희망’으로 귀국했던 반 전 총장이 현실정치의 벽에 걸려 넘어지면서 유력한 주자를 잃은 보수진영은 혼미에 빠져들게 됐다.

 어제 오전까지도 여야 대표들을 잇달아 방문했던 반 전 총장이 오후에 갑자기 측근 참모들과도 상의하지 않고 홀로 불출마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알려지지 않은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 전 총장 스스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탓이 크다. 귀국과 함께 가족의 비리 의혹부터 해명해야 했고, 줄곧 보수와 진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노리는 행보를 보이면서 정체성 혼란으로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홀로 하려니 금전적으로 빡빡하다”는 하소연같은 발언은 꽃가마를 기대했던 속내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인이라면, 특히 대선 주자라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과정이었다.

 정당을 청와대의 하부 기관처럼, 청와대를 왕조시대의 궁정처럼 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처절한 실패는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높였다. 많은 보수 유권자들도 직접 촛불을 들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보수의 출현을 기대했다. 그러나 구시대 이미지의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세를 모으는 과정부터 구시대적 이벤트로 일관해 변화를 원하는 민심에 부응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의 중도하차를 계기로 보수도 진정한 보수의 길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여론조사 2위 주자의 불출마로 이미 조기 대선 정국에 들어간 정치권은 거센 요동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보수층의 기대감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황 대행의 출마는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만드는 초유의 사태까지 낳을 수 있다. 일부 중도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은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같은 중도진보 주자들에게로 이동할 수 있다. 보수 단독 집권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좌우 연정론도 불거질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비록 정치적으로 혹독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그의 경륜은 국가적 자산임에 틀림없다. 이제 국민은 반 전 총장이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나아가 그의 공백으로 생긴 ‘기회의 창’이 어떤 대선 주자에게 열릴지, 특히 합리적 변화를 추구하는 50대 주자들의 비전과 능력을 꼼꼼히 비교하며 살펴볼 것이다.
#반기문#대선 불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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