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카드뉴스]낭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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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2월 1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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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사는 데만 급급해 진짜로 산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으니… 뭐가 진짜인지… 뭐가 가짜인지… 도무지 구분조차 안 되는 그런 세상.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낭만’을 이 시대의 해결책으로 제안한 강은경 작가를 만났다.



#1
Chapter 1 리더의 시대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매순간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그래도 김사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은 끝이 나는 거다. 알았냐”라고 말이다.
(20회 강동주의 독백 중에서)

#2
기자 ‘제빵왕 김탁구’ ‘낭만닥터 김사부’ 두 작품에서 리더를 그린 이유가 궁금하다.
장기태 죄송합니다만 그건 제가 답할 문제가 아닙니다.
작가 좋은 리더에 대한 로망이 있다. 이런 인물이 없는 듯해 현실 저 너머에 있는 팔봉 선생을 그렸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을 돌보다보니 서울 사대문 안 응급실을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그곳에서 사회 기반을 유지해주는 ‘김사부’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시청률 27,6%)는 돌담병원에서 벌어지는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와 열정적인 젊은 의사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만든 강은경 작가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시청률 49.3%)에서도 탁구를 돕는 팔봉 선생을 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좀 다르다. 은퇴한 팔봉 선생은 간접적으로, 재직 중인 김사부는 직접적으로 일선에 영향을 미친다.

#3
Chapter 2 낭만의 시대

병원 찾아다니다가 길 위에서 죽는 환자들이 얼마나 될 것 같아. 그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취약층이란 거 알고나 있어? 넌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냐. 난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야.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내가 마지노선이니까. (…) 전문용어로 개멋부린다고 하지. 좀더 고급진 말로 낭만이라고 그러고.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아직은 의사 사장님 되고 싶은 애들보다 의사 선생님 되고 싶은 애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이야.
(20회 김사부가 도윤완 원장에게 외상센터 필요성을 설명하며)

*외상센터-응급 외상환자를 위한 권역외상센터를 의미함.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국종 법)’에 따라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된 병원은 헬기 착륙장을 둬야 함.

#4
기자 갑자기 왜 낭만인가
작가 우리 사회는 낭만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착한 건 착한 거고 의로운 건 의로운 거다. 그런 가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낭만적이다. 고리타분하지만 그런 가치를 지향하면서 가야 하지 않나. 나의 낭만은 ‘진실은 칼끝을 들이대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는 거다.
도윤완 미치겠구만. 그 나이에 아직까지 그런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니.

외과의사 강동주는 매회 사회를 진단하며 내레이션을 시처럼 읊는다. “불의의 시대”(1회) ‘차별의 시대. 실력보다는 연줄과 배경이 지배하는 시대(2회)’ ‘출세만능의 시대’(5회) ‘가치 상실의 시대. 성공 이데올로기에 감춰 길을 잃은 사람들’(6회) ‘상처 외면의 시대. 실리를 챙길 수만 있다면 타인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9회)…. 이는 곧 낭만이 필요한 이유다.

#5
Chapter 3 존경의 시대

김사부가 저렇게 (인공심장 교체 수술에) 자신 있게 나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났다는 게 아닐까. 실수 또는 낭패 그 모든 변수들을 포함하더라도 나는 그 수술 꼭 들어 가보고 싶어 동주야. 인공심장 대 인공심장 수술이 흔한 수술도 아니고. 더구나 김사부가 집도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언제 또 오겠니. (…)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를 김사부랑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거에 감사할래.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16회 김사부를 존경하는 윤서정이 강동주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며)

#6
기자 김사부의 인공심장 교체 수술에 대해 오직 윤서정만 찬성하던데.
강동주 대체 뭡니까. 그 맹목적인 믿음의 실체는.
작가 존경하는 사람의 선택대로 가보는 것, 이런 게 존경 아닐까. 유인식 감독님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낭만닥터 김사부’를) 잘 찍고 싶다”고 카메라감독님한테 말했다던데. 그 말을 듣곤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덕분에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외과의사 이야기로 매회 2,3번의 수술 장면이 필요했다. 유인식 PD는 수술 촬영이 힘들었지만 촬영 막바지에도 수술 촬영을 거절하지 않았다. 15시간 동안 촬영한 인공심장교체수술 신은 의학계에서 교육용으로 썼을 정도로 우수했다. 강 작가는 “의학드라마 집필은 힘들었지만 날 믿고 따라준 스텝들에게 감동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7
Chapter 4 존중의 시대

지적받는 거랑 무시당하는 건 다른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함부로 취급당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여기 돌담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존중받았고요. 큰 잘못을 해도 혼은 날지언정 인격까지 무시당한 적은 없었어요. 당해주니까 더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연화 씨 편 들자고 도쌤(선생님)한테 그런 거 아니었어요. 돌담 병원 누구라도 그런식으로 함부로 취급당하는 걸 봤다면 나는 똑같이 했을 겁니다.
(17회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를 공개적으로 면박주자 박은탁 간호사가 후배 의사를 편들며)

#8
신회장 사람은 돈으로 잡아지는 게 아니잖아.
기자 까칠했던 김사부가 드라마 후반부에 후배들에게 자주 “괜찮다”고 하더라.
작가 후배가 사고 치면 ‘아휴, 괜찮아’ 하는 사람은 많을 거다. 하지만 후배가 괜찮게 일했을 때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괜찮다’고 해봐라. 반드시 결과가 있을 거다.
오명심 두고 봐요. 앞으로도 놀랄 일 많을 거라니까요.

작가창작집단 ‘글라인’을 만든 강 작가는 신인작가와 제작사를 이어준다. 후배들 멘토링도 한다. 강 작가도 처음에는 후배들의 글을 보며 “이러면 방송이 안 돼” “누가 보겠니” 비판했다. 하지만 딸(22개월)을 키우면서 겸손해졌고 “괜찮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JTBC ‘욱씨남정기’다. “후배(주현 작가)를 인정하니까 후배가 정말 잘 쓴 글을 가져왔다”고 한다.

#9
Chapter 5 양심의 시대

(가해자에게) 똑바로 쳐다봐.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바로 알아야 반성도 할 거 아냐.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아.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니! (가해자 엄마가 윤서정 뺨을 때리자) 때렸습니까. 왜 이렇게 당당하세요. 뭘 잘했다고. 미안함도 모르고 수치심도 모르고. 어쩌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됐을까요. 지금 저 때리신 거 맞고소 들어가겠습니다. 합의나 타협 절대 없습니다.
(11회 윤서정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와 그 엄마에게)

#10
기자 외상센터 건립을 꿈꾸는 김사부를 보며 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국종 의사가 떠올랐다.
작가 그분이 모델은 아니지만 그분이 겪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많은 외상센터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을 닫을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는 돈이 되는 쪽에 너무 몰리는 경향이 있다. 그게 문제다. 의학계도 드라마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여운영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강은경 작가는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과를 기피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한류 열풍의 그늘도 언급했다. “한류 덕분에 한국 드라마 시장이 넓어지고 시청자들이 급증했다”면서도 “한류 이후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극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붐을 활용하면서 고민할 지점은 살폈어야 하는데 그렇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11
Chapter 6 원칙의 시대

상황에 따라 상대방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는 건 원칙이 아니라 궤변이야. (…) 변명하지마.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이 죽을 뻔했어. (…) 나한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꿈 깨. 상황에 따라서 그 원칙이 변하는 놈한테는 무시와 조롱 경멸과 쌍욕밖에 해줄 게 없으니까.
(5회 김사부가 원칙을 어긴 강동주에게)

#12
윤서정 겁도 많아지고 변명도 많아지고 왜 그렇게 변한 거니. 사는 게 그렇게 힘들디!
기자 살다보면 원칙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당신이 생각하는 원칙은 뭔가.
작가 자신이 선택한 것,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정성을 담는 거다. 우리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 아닌가.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한 속도로, 한 방향으로 달리나. 원칙과 기본에 대한 답은 우리 안에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는 탈영병 사인(死因) 논란 에피소드가 나온다. 담당의인 강동주는 사인을 병사, 외인사 중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다. 거대병원 도윤완 원장은 연봉 인상, 유학 등을 유인책으로 꺼내곤 사인을 ‘병사’로 할 것을 권한다. 결국 강동주는 원칙을 지킨다. 강 작가는 “내 걸음으로 소신 있게 가는 이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13
Chapter 7 변화의 시대

네가 시스템을 탓하고 세상 탓하고 그런 세상 만든 꼰대들 탓하는 것 다 좋아. 좋은데! 그렇게 남 탓 해봐야 세상 바뀌는 거 아무 것도 없어. 그래봤자 그 사람들 네 이름 석 자도 기억하지 못할 걸. 정말로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하는 거 그만하고 네 실력으로.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알겠냐.
(4회 김사부가 돌담병원 생활에 대해 불평하는 강동주에게)

#14
기자 신회장이 심장수술을 한 뒤 마음마저 바뀌더라.
작가 돈이 삶의 목표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돈돈돈”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 그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꿀 타이밍이 아닐까.
김사부 자-집중!
강동주 김사부가 말했다. 세상에 가장 큰 저항은 자신이 해내가는 일을 하는 거라고. 어쩌면 김사부는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려나 걱정이 한낱 깃털의 무게보다도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극중 나오는 기자는 김사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십니까. 자기 자신을 깨는 겁니다”라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깨는 일은 어렵다. 일찍이 헤르만 헤세도 소설 ‘데미안’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강 작가가 제안한 ‘저항’은 ‘낭만’이었다.

*이 기사는 1월 24일 진행한 강은경 작가 인터뷰와 ‘낭만닥터 김사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기획‧취재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기획‧디자인 강부경 기자 bk0928@donga.com
#낭만닥터#김사부#낭만닥터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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