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대북정책 실종 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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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조기 대선, 벚꽃 대선…. 정치권은 이미 대선 정국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도 대놓고 대권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시기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닌 모양새다. 벚꽃 대선이 없다고 한들 손해 볼 건 없다는 심산이다. 유비무환이랄까. 대선 판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장들 역시 꼭 이번 대선이 아니어도 내년 지방선거, 차기 대선 운동을 예습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만큼 실보다 득이 많다.

 정치권의 빨라진 대선 시계만큼 우리 사회 청사진도 쏟아지고 있다. 가만있어도 세금을 나눠주겠다는 공약부터 일자리, 조세, 경제, 복지 분야 등이 총망라됐다. 하지만 아직까진 ‘정책 쇼핑’ 수준이 대부분이다. 한 대선 주자가 일자리 공약을 내놓으면 다른 주자들도 같은 분야 공약을 내놓는 식이다. 군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이 대표적이다. 18개월, 12개월, 10개월에 이어 모병제 전환까지 점점 더 센 공약으로 이슈 선점에만 매몰돼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정책 쇼핑 중에서도 유독 대북정책은 빠져 있다. 기껏해야 거론된 안보 정책이라고는 사탕발림 냄새 가득한 군 복무 기간 단축과 사드 배치 갑론을박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남북 비무장지대(DMZ) 공동개발, 유라시아 철도 개설, 개성공단 확장 같은 다양한 대북정책이 제시된 것과도 다른 모습이다.

 한마디로 대북정책 실종 사태다. 언제부터 우리가 안보, 특히 북한 문제를 이렇게 등한시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대북정책이 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더구나 야권이 대선 정국의 주도권을 쥔 현재 상황도 반영돼 있는 듯하다. 설익은 대북정책을 내놨다간 도리어 공격 빌미만 줄 수 있고, 최악은 색깔론 구설에 휘말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행태다. 안보라는 알맹이를 쏙 뺀 인기 영합주의 정책 쇼핑으론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준비된 대통령’이니, ‘미래 지도자’라는 말도 겉만 번지르르한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하는 한미 동맹이나 중국과의 동반자적 관계 속에도 결국 대북 문제라는 특수 연결고리가 내재돼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이른바 강대국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이 대북 문제다.

 2012년 초겨울 일본 도쿄의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만난 미국 무관에게서 그런 실상을 절감한 적이 있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기를 맞은 때다. 미국 무관에게 일본의 허황된 영토 분쟁 야욕을 역설했지만, 그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현재 이익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 속에서 일본은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 한국은 미국 안보의 위협 요소인 ‘북한과 대치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속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게 국제사회 속 한국에 대한 인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팽팽한 세계 안보 구도 속 균형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천방지축 같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물며 차기 대권을 견주는 주자라면 당연히 명확한 대북 플랜을 밝혀야 한다. 대북정책만큼은 침묵이 금이 되어선 안 된다. 대북 구상을 내놓고 꼼꼼히 진단하고, 치열하게 토론한 뒤 완성본을 검증 도마에 올려놔야 한다. 검증은 유권자뿐 아니라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도 맡게끔 해야 한다. 대북정책은 대외 신인도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 설익은 대선 정국에서 이런 걱정이 기우이길 바란다. 대북정책 실종 사태의 조기 마감을 기원한다.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hot@donga.com
#대북정책#대통령 선거#한반도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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