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주는 불황에 울고… 청년직원들은 임금 떼여 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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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체불임금 1400억/스타트 청년일자리]자영업 침체→ 임금체불 악순환

 “한 달만 더 기다려줄 수 있을까? 권리금을 받아야 돈이 생기니 말이야.”

 PC방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온 취업준비생 홍모 씨(29). 지난해 12월 말 업주가 가게 문을 닫는 바람에 요즘 편의점에서 일한다. 하지만 한 달 치 월급 150만 원을 여태껏 받지 못했다. PC방 업주는 가게가 나가야 돈이 생긴다며 차일피일 지급을 미뤘다.

 월급만은 확실히 챙겨주던 업주의 딱한 사정이 마음에 걸린다. 인근에 경쟁업소가 많이 생겨 매달 적자가 난 것도 잘 알고 있다. 요즘 경기에 권리금(시설투자비) 2억 원을 내고 PC방을 하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홍 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도 돈이 급하기 때문에 이번 달까지 못 받으면 신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자영업 도산과 임금 체불의 ‘악순환’

 지난해 청년(15∼29세) 임금 체불 신고액(1406억700만 원)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청년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PC방, 편의점, 치킨집 등 5인 미만 사업장들이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산업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 자영업으로 몰리면서 경쟁이 격화돼, 조기 폐업과 임금 체불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도·소매업의 평균 생존 기간은 5.2년, 음식·숙박업은 3.1년에 불과하다.

 여기에 조선업 구조조정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것 역시 임금 체불이 급증하는 원인이다. 경기 침체와 조선업 구조조정이 겹치면서 지난해 국내 전체 임금 체불 신고액은 역대 가장 많은 1조4286억 원까지 증가했다. 견고한 성장세를 자랑하며 안정된 일자리로 통하던 조선업마저 임금 체불이 폭증하면서 이 부문에서 10년 이상 일한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청년들까지 임금 체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경남 거제의 중소 조선업체에서 일하던 김모 씨(27)는 지난해 10월 퇴직했다. 말이 퇴직이지 사실상 해고였다. 업체가 도산하면서 퇴직금은 고사하고 6개월 치 월급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해 봤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업주가 부도가 난 상황이라 회사 자산이 매각될 때까지는 줄 돈이 실제로 없는 상황이고, 상습적이거나 고의적인 체불이 아니어서 구속을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실업급여로 3개월을 버티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조선업 경기가 워낙 안 좋아 맞는 일자리를 찾기도 여의치 않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9.8%)이 역대 최악으로 치솟으며 청년들은 ‘고용 절벽’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나마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마저 구조조정 등으로 사실상 해고를 당하고, 밀린 임금까지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삼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 ‘맥도날드 망원점’ 사례 주목

 체불 임금은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임금을 상습, 고의적으로 체납하는 악덕 업주가 많은 것 역시 원인으로 꼽힌다. 임금 체불을 강하게 처벌하는 일본은 연간 체불액이 1440억 원(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인구(일본 1억2600만 명)와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임금은 근로자의 피와 살이고, 체불은 근로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체불 임금 해소를 가장 큰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상습, 고의, 거액 체불 사업주의 실명을 즉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강력히 처벌하기로 했다. 또 퇴직 근로자만 받을 수 있었던 체불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연 20%)를 재직 근로자도 받도록 하고, 최근 청년 임금 84억 원을 체불한 혐의가 적발된 이랜드파크 등 대형 프랜차이즈나 영화관 등에 만연한 ‘시간 꺾기’(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근무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편법)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뿌리 뽑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는 통상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벌금이 체불 임금보다 적어 효력이 별로 없다”며 “체불액과 동일한 부가금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산이나 경제위기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주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많아지고 있어 무조건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 때문에 최근 고용부가 사업주와 대기업, 청년들을 적극 중재해 체불 임금을 해결한 ‘맥도날드 망원점’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맥도날드 망원점 사장은 가맹수수료 지급 문제로 본사와 갈등을 겪다 가맹계약을 해지당하자 지난해 12월 4일 근로자 69명의 임금과 퇴직금 1억6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 이에 고용부는 적극 중재에 나서 일단 사장에게 “본사가 압류한 계좌가 풀리면 체불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맥도날드 본사 역시 압류 해지에 동의하면서 근로자 69명은 1월 25일 체불 임금 전액을 받았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어느 정도는 어려움을 풀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청년 비례대표인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은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 사업장의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임금 체불 예방을 위한 홍보와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각 지방고용노동지청이 임금 체불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재하는 노력도 필수”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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